화이자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엔브렐'
화이자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엔브렐'

화이자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약업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환자가족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반면 제얍업계에서는 화이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화이자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이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수 있다는 단서를 발견했는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덮었다고 보도했다. 화이자를 향해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까닭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화이자 내부 연구팀은 2015년 엔브렐과 관련된 12만 7000명의 의료보험 기록을 검토하던 중 엔브렐을 복용한 사람이 복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64%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연구팀은 회사 측에 알츠하이머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할 것을 요구했지만 화이자가 재정적인 이유로 치료제 개발에 나서지 않은 것은 물론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게 워싱턴포스트 보도의 골자다.

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 국내에 전해진 이후, 약학계 일부에서는 화이자가 제약사의 사회적 책임을 져버렸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약대 교수는 “가치 평가의 측면에서 화이자가 공익보다는 이익을 선택한 것”이라며 “그동안 치매 치료제 관련 임상 연구는 좋은 표적을 찾지 못해 대부분 실패했다. 엔브렐의 치매 예방 효과로 적응증이 확대된다면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화이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임상을 포기한 결정은 공익적인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치매 치료 분야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그동안 치매 신약개발에 줄줄이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알츠하이머 신약 ‘아두카누맙’을 공동 개발해왔지만 최근 임상 3상을 중단했다.

학계에서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해왔다. 뇌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서로 뭉치면서 플라그(Plague)를 형성해 뇌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것. 하지만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빅파마 역시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도전했지만 임상시험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앞서의 약대 교수는 “이제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분자표적으로 삼는 약들로 알츠하이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라며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신경염증이다. 류마티스 관절염 역시 염증과 관련된 질환이기 때문에 엔브렐이 신경염증에 제대로 작용한다면 획기적인 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약사사회에서는 화이자가 향후 ‘공적 정보’로 활용될 수 있는 치매 억제 효과에 관한 자료를 은폐했다는 점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의 강아라 정책국장은 “엔브렐은 염증 반응을 없애는 약이다”며 “최근 뇌 속의 염증 농도뿐 아니라 체내 염증이 높은 사람도 치매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체내 염증 수치를 낮추면 그것으로 유발된 치매가 없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엔브렐 사건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화이자가 돈이 없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었다면, 공공데이터로 개방해 다른 회사들이 기존 자료와 비교해 가능성을 따져보거나 정부의 공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화이자가 엔브렐이 보여준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의견이다.

물론 화이자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과학에 근거한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을 워싱턴포스트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며 “우리도 견고한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면 당연히 진행했겠지만, 보험 데이터는 제한된 수의 사례만 다뤘으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화이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엔브렐의 분자가 커서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없어 약효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밝혔다.

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브렐이 기본적으로 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치매 예방에 대한 약효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는 뜻이다”며 “뚜렷한 약효도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화이자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제약사는 이익 중심으로 굴러가는 회사다. 장기적으로 손해가 생긴다고 하면 적응증을 확대하거나 신약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 엔브렐의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화이자가 전략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화이자를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환자 가족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치매 환자 가족인 A 씨는 “처음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봤을 때 충격이 컸다”며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셨지만 막상 병원에 갔더니 할머니는 아팠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기억을 잃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화이자가 엔브렐의 치매 예방 효과를 숨겼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참담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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