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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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편의점 수가 지난해 4만개를 돌파했다. 상비약을 취급하는 점포도 3만곳을 넘어섰다. 하지만 ‘연중무휴’로 운영하던 편의점 수는 줄고 있다. 밤 시간 급하게 약 살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비상약 파는 가게를 늘리겠다는 계획이 도마에 오른 까닭이다.

13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대표 프랜차이즈 편의점들 중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는 점포 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세븐일레븐은 2017년 17%에서 2018년 17.7%, 2019년 1분기 18.1%로 늘었으며, CU도 같은 기간 16%에서 20%까지 증가했다. 이마트24의 경우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무려 78.4%의 점포가 심야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약국과 병원이 문을 닫는 밤에 국민들이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도 그 만큼 줄어들게 됐다.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시행한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약사사회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상비약 확대를 추진하려는 정부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

안전상비약제도는 국민이 급한 일반의약품을 늦은 시간에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팔려면 점포를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로 등록하려는 자는 24시간 연중무휴 점포를 갖춘 자’로 등록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상비약 제도 시행 이후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상비약 취급 편의점에 대한 행정 점검은 관할 보건소가 하도록 돼 있는데 1년에 고작 1~2회가 전부다. 단속을 나가더라도 업주가 직접 작성한 자율 점검표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의약품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상비약 판매 업소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경기 인천 535개 편의점 중 심야시간(오전 2시~5시)에 상비약 구입이 불가능한 곳은 120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4곳 중 1곳 꼴로 ‘24시간 약 판매’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중 90%는 애초부터 심야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관할 지역에 편의점, 약국, 의료기기 업체가 1천개를 훌쩍 넘는다. 이를 제한된 인원으로 모두 관리·감독해야 한다”면서 “애초부터 실효성 있는 점검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편의점 상비약을 결사 반대하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던 약사사회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을 활용한 상비약 접근성 강화라는 제도 취지가 시대 흐름에 분명 역행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잘못을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품목 확대라는 카드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사회는 일반의약품이 약국 밖으로 하나 둘씩 내보내지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동네약국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일반약 비중이 50~8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상비약이 확대되면 약국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타이레놀, 판콜 등 13개 품목이 편의점으로 나가면서 약국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이들 품목이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손님을 끌어 들이는 ‘미끼 상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부가적인 수입 창출 기회는 그 만큼 잃게 됐다.

약사회 관계자는 “편의점 상비약 확대는 약국 경영 측면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큰 병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된다. 실제 심근경색, 뇌경색, 간경화, 간암 등에도 소화 불량 증세가 나타난다. 계속 소화불량 약만 먹다보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약국에서 상담을 받다보면 큰 병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또 계속 같은 약을 사러오면 약사들이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약사에게 독점적인 일반약 판매 권한이 주어진 것인데 정부는 약사 면허 부여에 대한 의미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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