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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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가 최근 복제의약품에 국제일반명(INN)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자 제약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형 제약사들은 일단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중소사들은 INN이 영업활동에 미칠 파장에 대해 신경이 곤두선 모양새다. 그동안 제약사 영업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병원 역시 이제는 약국에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일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일반명에 대한 연구용역 추진 계획을 밝혔다. 발사르탄 사태로 드러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정부의 속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INN은 WHO에서 시행 중인 제도로, 화학 구조가 복잡한 약물을 간단하게 체계화해서 부르기 위해 만든 일종의 작명법이다. 허가 단계부터 성분이 동일한 의약품을 각 회사의 브랜드 명이 아닌 ‘제조사+성분명’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식약처는 무분별한 복제약 난립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INN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제약업계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년 동안 막대한 영업력과 자본을 투입해 구축한 브랜드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INN 도입으로 브랜드가 확고한 제약사는 매출이 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미약품의 팔팔이 아닌 ‘한미약품+타다라필’로 시중에 나온다면, 인지도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급여 의약품에서 브랜드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고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미약품의 팔팔과 구구는 ‘99세까지 팔팔하게’라는 광고 슬로건으로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두 약은 각각 비아그라 복제약, 구구는 시알리스 복합제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팔팔’과 ‘구구’로 각인돼 온 것.

INN이 적용될 경우, ‘한미약품+타다라필, 한미약품+실데나필’이란 이름으로 판매해야 해야 한다. 한미약품 측이 그동안 진행해온 팔팔과 구구의 마케팅과 영업 전략의 전면적인 수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아직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기 때문에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제약업계 일각에선 제네릭 시장의 특성상 중소제약사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제품이 수백개가 나와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진입한 중소제약사들은 고객들에게 인지도가 전혀 없다”며 “이들 기업은 브랜드 파워가 약한데 INN 도입으로 성분명만 노출될 경우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마케팅 담당자 사이에서는 ‘약가 제도 개편’으로 INN 도입이 단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들리고 있다.

대형 제약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법이 바뀐 만큼 어차피 제네릭 난립은 불가능하다. 자체 생동능력을 갖추지 않는 한 제네릭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 수 있는 제약사는 없다”며 “제약사+성분을 표기해 상품을 판매해도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INN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약업계에선 INN 도입을 ‘성분명 처방’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제약사의 영업력이 ‘병원’이 아닌 ‘약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읽혀지는 이유다.

앞서의 마케팅 담당자는 “INN 도입은 성분명 처방의 연장선일 것”이라며 “지금 엄청나게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식약처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할 경우 장기적으로 제약사의 영업력은 약국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의사가 값비싼 제네릭을 처방해도 약사가 값싼 제네릭을 쓰겠다고 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국제일반명 도입이 성분명 처방 추진을 위한 방안으로 의약분업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환자의 알 권리를 위해 적극 추진해야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작은 INN도입이지만 종국적으로는 성분명 처방의 성격을 띨 것”이라며 “의사의 약품선택권이 약사한테 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제네릭을 취급하는 대형 제약사들은 물론 중소 제약사들도 약국에 영업력을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INN이 국내 제약시장의 지각변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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