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한미약품 탄생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이 약가인하 압박과 내수 불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국내 주요 제약사 40곳의 최근 5년간(2014년~2019년 1분기) R&D 투자 규모와 실제 연결된 라이선스아웃(기술수출) 성과를 분석해 기업별 순위를 매겨봤다.

우선 R&D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곳은 한미약품이었다. 회사는 최근 5년 간에만 1조원에 육박하는 연구개발비를 쏟아 부었다. 이어 GC녹십자(6,171억원), 대웅제약(5,927억원), 종근당(5,130억원), 유한양행(4,677억원), 동아에스티(3,705억원), JW중외제약(1,686억원), 보령제약(1,587억원), 일동제약(1,360억원), 유나이티드제약(1,257억원), 부광약품(1,247억원), 대원제약(1,073억원), 일양약품(1,013억원), 한독(1,008억원) 순으로 R&D에 투자를 많이 했다.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크게 증가한 곳은 삼천당제약이었다. 지난 2014년 20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2018년에 126억원으로 6배 급증했다. 이 기간 부광약품도 137억원이었던 연구비를 298억원으로 2배 늘렸다. 이어 유한양행(94%↑), 신일제약(86%↑), 삼진제약(83%↑), 영진약품(78%↑), GC녹십자(72%↑), 비씨월드제약(66%↑), 국제약품(57%↑), 동국제약(55%↑), 종근당(54%↑), 대원제약(53%↑) 순으로 연구개발비 증가폭이 컸다.

최근 5년새 연구개발비가 줄어든 곳도 있었다. 2014년 30억원을 연구개발비에 썼던 진양제약은 지난해 그 규모가 12억원으로 줄어 61% 감소했다. 신풍제약 역시 156억원에서 136억원으로 역주행했다.

이처럼 제약사들은 벌어들인 수익을 일정 부분 떼어내 수 십억에서 부터 수 천억원까지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기업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재투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미래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R&D에 쏟아 부은 돈은 과연 수익으로는 얼마나 연결됐을까.

실제 이번 조사대상 40곳 중 의미 있는 기술수출 계약에 성공한 곳은 11개사에 불과했다. 계약 규모별로 보면, 한미약품(7조5,510억원), 유한양행(2조6,678억원), 동아에스티(9,450억원), 보령제약(5,884억원), JW중외제약(4,962억원), 일양약품(2,883억원), 유나이티드제약(1,501억원), 영진약품(627억원), 삼천당제약(614억원), 신풍제약(532억원), 부광약품(400억원)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계약금 수령 기준으로 보면 1,000만 달러 이상 지불된 곳은 4곳에 그쳤다. 한미약품(3억8,000만달러), 유한양행(6,500만달러), 동아에스티(4,200만달러), JW중외제약(1,700만달러)순이었다.

이 외에 GC녹십자, 종근당, 일동제약, 대원제약, 경보제약, 이연제약, 유유제약 등은 영업기밀상의 이유로 계약규모를 공개하지 않았고 광동제약, 제일약품 등 절반에 가까운 22곳은 아예 기술수출에 따른 금액조차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R&D투자가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건 맞지만 반드시 기술 수출만이 목표는 아니다.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 한 바도 크다”면서도 “다만, 막대한 R&D 투자에 비해 해외 기술수출이 적었던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래 가치적인 차원에서 글로벌 시장의 니즈에 부합하는 치료제 개발과 최종적인 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적 접근법은 개선해야 할 문제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이번 조사대상에 오른 40개 기업의 R&D 투자대비 기술수출 현황도 세부적으로 살펴봤다.

일단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를 통틀어 라이선스아웃의 절대적 강자임이 입증됐다. 회사는 지난 5년간 연구개발에만 9,3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기간 거둬들인 수익은 6,500억원이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기술반환과 사노피의 계약 해지 사태를 겪었지만 이를 제외하고 공개된 최소 계약규모만도 7조5,000억원이 넘는다.

유한양행은 R&D에 4,600억원의 돈을 썼다. 그리고 지난해 2건과 올해 1건의 기술수출 계약으로 성과를 보상 받았다. 회사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퇴행성 디스크치료제 후보물질(YH14618)을 약 2,500억원에 수출했으며, 얀센 바이오테크와 비소세포폐암 치료를 위한 임상 단계 신약 후보물질 ‘레이저티닙(Lazertinib)’에 대해 1조5,000억원대의 기술 수출 체결에 성공했다. 또 올해 길리어드사이언스에 약 9,200억원 규모의 비알콜설 지방간염(NASH) 물질에 대해서도 계약을 맺었다.

동아에스티는 연구개발에 3,700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공개된 계약건만 9,100억원 규모로, 계약금은 약 540억원이었다. 특히 당뇨병성신경병증치료 천연물의약품 DA-9801을 2,100억원에, 지속형 적혈구 조혈자극제의 바이오시밀러인 DA-3880을 6,200억원 규모로 해외에 파는 데 성공했다.

보령제약은 1,587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동안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 패밀리를 해외로 기술수출했다. 계약금액은 2014년부터 올 1분기까지 5,900억원 규모다. 중국·맥시코·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서 순항중이다.

JW중외제약은 1,686억원을 R&D로 지출했다. 회사는 개발 중이던 아토피 신약 ‘JW1601’을 총 4억200만달러(4800억여원)에 기술수출하고 1700만 달러(200억여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창립 73년 만에 이뤄낸 첫 글로벌 기술수출로 전임상(동물임상) 단계에서 이뤄진 대형 계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GC녹십자는 2,868억원을 연구개발에 사용했다. 그 결과로 ‘헌터라제’와 ‘녹사반(Nokxaban)’ 2건의 기술수출 계약이 체결됐다. 다만 계약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인 차세대 대상포진백신의 중간 결과가 다음 달 해외 학회를 통해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기술수출 등 또 다른 외부와의 협업이 가시권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종근당도 R&D에 2,340억원을 투입했다. 회사는 지난해 빈혈치료제 CKD-11101을 라이선스아웃 했지만 계약규모에 대해서는 비공개 했다. 현재 유럽 2a상이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 ‘CKD-506(자가면역, HDAC6)’의 기술 수출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웅제약은 연구개발에 2,636억원을 지출했지만 아직까지 기술수출 계약은 한 건도 없다. 다만 최근 ‘나보타’의 글로벌 수출계약이 3,700억원 규모로 체결돼 미국과 유럽의 시판에 따라 향후 수출 실적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제일약품 역시 R&D 투자로 1,664억원을 들였지만 기술수출 소식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현재 임상 추진 중인 뇌졸중 치료제(JPI-289)를 비롯해 역류성 식도염 약(JP-1366) 및 표적항암제(JPI-547) 등 신약 파이프라인의 라이선스아웃 타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동제약은 최근 5년간 1,36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고혈압·고지혈증 치료제인 ‘텔로스탑’과 ‘드롭탑’을 국내에 발매했다. 이는 각각 안국약품·대원제약·셀트리온 및 애보트에 허가권을 부여하고 완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계약규모는 모두 비공개다.

이 외에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실로스탄 CR정으로 중국에 6,435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고, 영진약품은 미토콘드리아 질병 치료제로 KL1333을 스웨덴 제약사에 기술수출 했으며 부광약품은 ‘리보세라닙’을 에이치엘비생명과학에 400억원에 라이선스 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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