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적자, 보장성 강화 정책 등 변수가 많았던 수가협상이 또 다른 기록을 냈다. 31일 자정을 훌쩍 넘긴 이튿날 오전 8시경 대한의사협회를 제외한 전 유형이 협상을 마무리했다.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단체는 약 17시간 동안 10여차례에 걸친 협상에 임하면서 의협의 결렬 선언 등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올해 수가협상에 따른 벤딩폭(추가 소요재정)은 1조 478억원으로 결정됐다. 당초 건보재정 적자를 이유로 벤딩폭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전년보다 720억이 늘어났다.

공급자단체들의 평균 수가 인상율은 2.2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2.37%보다 0.08% 떨어진 수치다.

유형별로는 의원 2.9%, 병원 1.7%, 약국 3.5%, 한방 3.0%, 치과 3.1%이고 대한약사회는 전년대비 0.4%p 오른 것은 물론 지난해에 이어 수가 인상률 1위를 차지했다. 다만 협상 결렬을 선언한 의협의 수가 인상률은 향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단순한 숫자의 나열 같지만 공단과 공급자단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긴 수싸움을 계속했다. 공급자단체와 공단은 이례적으로 31일 오후 3시 30분부터 1일 아침 8시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다.

공단 측은 공급자단체들과 협상을 마치면 재정운영소위원회에 찾아갔다. 역대 최장시간 재정소위가 열렸고, 협상 마지막날의 타결 속도는 가장 더뎠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3차 협상은 깜깜했다. 깊은 고민 탓인지 이후 4차 협상은 밤 10시경에서야 재기됐다. 4차 협상을 전후로 열린 재정소위 회의는 꽤나 길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가 지나서야 위원회 및 공단의 회의가 끝났고 1시 15분 약사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치전이 벌어졌다.

공급자단체는 이번 협상에서 보험자가 건보재정과 진료비 증가분을 이유로 벤딩폭을 박하게 제시한다면 참지 않겠다는 의지를 적극 피력해왔다. 공급자별 입장은 다르지만 저마다 수가인상의 당위성은 확고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주지 않을 경우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다는 모양새였다.

이례적으로 협상 차수가 올라갈수록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던 배경이다. 서로 원하는 수치만 제시하고 간극 각자 고민해보는 전략은 마라톤 협상으로 이어졌다. 공급자 단체의 수가협상단은 침통한 표정으로 협상장에 들어갔고 다시 어두운 얼굴로 협상장을 빠져나왔다.

협상이 답보를 거듭하자 일부 공급자단체 수장들은 수가협상장을 찾기도 했다. 대한약사회 김대업 회장과 치협 김철수 회장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의협 최대집 회장도 뒤늦게 협상장을 찾았다.

특히 자정을 넘긴 새벽 2시경부터 진행된 5차 협상에서는 공급자 단체들이 릴레이로 협상장에 2~3분 정도 짧게 머무르기 시작했다. 공단 측이 새벽 4시경 병협의 8차 협상을 마친 뒤 약 1시간에 걸쳐 재정소위에서 다시 벤딩폭을 논의했다. 그만큼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험난했다.

공급자 단체들은 새벽 5시가 돼어서야 협상에 다시 돌입할 수 있었다. 아침 7시경 대한병원협회, 대한한의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순으로 수가 협상이 타결됐다. 의협은 마지막까지 협상 테이블에 남았지만 끝내 결렬을 선언했다.

공급자단체들은 대체로 수가협상안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병협 송재찬 수가협상단장은 수가협상 타결 직후 “회원들이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충분히 보상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공단 측은 벤딩폭 확대를 위해 많이 노력한 것처럼 보였는데 충분히 느끼는 것만큼 확대됐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의협 김경호 수가협상단장은 “전체적으로 밴드가 타이트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많이 아쉽지만 원래 협상은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재정소위와 공단 사이에서 공급자단체들이 벌이는 게임은 비효율적이다.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협 김수진 보험이사는 “13차까지 협상을 했는데 오늘까지 장시간 끌기는 처음이다”며 “벤딩폭이 생각보다는 작지만 작년보다는 나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했다.

대한약사회 윤중식 보험이사는 “이번처럼 힘들고 어려운 협상은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며 “ 이번 협상은 김대업 회장을 비롯한 협상단원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어느정도 회원들의 어려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결렬을 선언했다. 김필수 수가협상 단장은 “좋은 결과를 받았어야 했는데 협상단장으로서 회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1.3%부터 시작해서 2.9%의 수가인상률을 올리면서 10차 협상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반면 공단 측의 입장은 공급자단체들과 다른 온도차를 드러냈다. 강청희 급여상임기획이사는 “공단은 일부 유형과 계약체결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공급자의 기대치와 가입자의 눈높이가 다른 상황에서 양면협상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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