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기획상임이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지난해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2019년 OECD 보건의료 질과 성과 워킹그룹(HCQO) 의장으로 한국인이 선임된 것이다. 이는 전 세계 보건의료 외교사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외교부 직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쾌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 그녀는 2007년부터 12년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한국을 대표해 HCQO 작업반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본지는 김선민 이사를 만나 한국인 최초로 OECD HCQO 워킹그룹 의장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 전 세계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시스템에 대해 들어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기획상임이사

≫ “깜짝 놀랐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김선민 심평원 기획상임이사는 자신이 보건의료 분야의 ‘리더’로 선출된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김 이사는 “지난해 가을, HCQO 사무국 담당자가 보낸 메일을 확인했는데, ‘다음 번 의장으로 사무국 사람들과 전임의장인 덴마크 사람이 당신을 1순위로 지목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꿈인가 생시인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밝혔다.

HCQO 워킹그룹(Working Party on Health Care Quality and Outcome)은 의료의 질 측면에서의 보건의료 성과 지표를 개발하고 통계분석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OECD 회원국의 성과를 비교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OECD 보건위원회(Health Committee) 산하 작업반이다.

≫ OECD, 김선민 이사에 ‘중책’ 맡겨

김선민 이사는 HCQO 작업반을 대표해 주요 의사를 결정하고, 전문가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OECD가 김선민 이사에게 회원국(36개국) 6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진두지휘하는 중책을 맡긴 것.

김선민 이사는 “초등학교 시절 키가 작고 나이도 한 살이 어렸기 때문에 반장과 부반장은 제게 이른바 ‘넘사벽’이었다”며 “5학년 때 부반장으로 선출됐을 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이번에 의장직을 제안 받았을 당시 그때만큼 설렜다.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김 이사의 의장 선출은 서구 영어권 중심의 인사 관례를 깨뜨린 파격 그 자체였다. 김선민 이사는 “OECD는 서구 국가들이 주종을 이루는 곳이다. 영어권도 아닌 한국의 여성에게 그런 제안이 올 거라고는 정말 예측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선민 이사는 자신의 능력보다는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에 HCQO 작업반 의장으로 선출됐다고 회고했다.

김 이사는 “의장 선출은 개인의 능력보다 ‘그 사람이 속한 나라의 국력과, 그 나라의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OECD에선 국제적 영향력이 낮으면 큰 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크고, 특히 의료의 질과 관련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공유할 것들이 많다. 조국과 심평원에 감사하는 이유다”라고 전했다.

≫ OECD 부의장 이력, 높게 평가

OECD 측은 특히 김선민 이사가 HCQO 부의장으로 활동(2011~2015년)한 이력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 심평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근무하던 김선민 이사는 OECD 프로젝트지원단장을 맡아 HCQO의 실무 책임자, OECD 보건의료의 질 국가평가(Quality of Care Country Review) 등 다양한 사업에서 한국 대표로 활동했다.

그렇다면 부의장 시절, 김선민 이사에게 기억에 남은 성과는 뭘까.

김 이사는 2012년 OECD에서 하는 Health Care Quality Review(의료의 질 검토보고서) 사업에 우리나라가 가장 첫 번째 국가로 참여했던 것을 떠올리며 “한국보건의료체계 전반을 의료의 질 관점에서 검토하는 보고서였다. 당시 120개가 넘는 질문에 대해서 200쪽이 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당시 ‘한국은 약품의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 이사는 “식약처 질병관리본부 등 국가기관에 전부 물어보고 번역한 뒤 제출했다”며 “밤을 여러 번 꼬박 샜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선민 이사는 답변서를 제출하는 과정을 총괄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OECD가 한국의 답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김 이사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 이는 OECD의 엄격한 규칙 때문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선민 이사는 “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얘기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의료계, 시민단체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우리 측의 답변 내용을 꼼꼼히 체크했다”고 설명했다.

≫ 200쪽 넘는 답변서, OECD 마음 얻었다

김선민 이사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김선민 이사는 “답변서를 읽은 OECD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심포지엄을 했다”며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와 건강보험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한번 바라봤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나라를 OECD 회원국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보건 분야 외교는 국민들에게 체감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OECD와 같은 국제기구 내의 활동은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선민 이사의 OECD 활동에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김선민 이사는 그동안 OECD 통계를 바탕으로 국내 보건 당국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고 또 만났다. 구두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었다. 결국 김선민 이사의 간절함과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김선민 이사는 “OECD에서 어떤 통계 관련 사업을 하는데 한국 상황에서 중요하다 싶으면 그때그때 해당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알렸다”며 “정책과 연계된 통계는 정말 추리소설 같은 매력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국제기구 담당자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

김선민 이사는 “한국은 살아있는 고민을 했던 전문성이 가득한 나라다”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77년부터 시작해서 89년까지 빠른 속도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차원이 다른 고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건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많은 국가들이 건보와 같은 시스템 도입을 고민할 때 이미 한국을 두고 짧고 압축적으로 다이나믹 한 경험을 해본 국가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 살아있는 고민을 했던 다이나믹한 나라”

김선민 이사의 다양한 경험은 한국의 보건의료정책의 압축된 역사와 만났다.

김 이사는 “2000년 의약분업하고 건강보험을 통합할 때 저는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치열하게 논의했다”며 “그때의 고민이 뭔지 잘 알고 있으니까 OECD에 가면 토론이 됐다”고 밝혔다.

즉, 우리나라가 보건의료 정책의 ‘인스티튜셔널(institutional) 메모리’를 갖춘 덕분에 다른 나라들의 ‘참고서’가 될 수 있었다는 뜻. 김선민 이사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구체적인 메시지로 세계에 전했다.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렇다면 김선민 이사의 포부는 뭘까.

김선민 이사는 “HCQO도 최근 2~3년 사이 활동이 조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데이터 제출 부담이 많고 과거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한 명 한명 빠지면서 침체된 게 사실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장직을 수행하게 되면 주요국가 대표들에게 미리 부탁해서 회의체가 더 활성화되도록 할 것”이라며 “즉 통계분석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주문만 할 것이 아니라 각국의 관련 정책이나 현황 등을 공유하는 데 회의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 OECD, 심평원 ‘HIRA’로 부른다

OECD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HIRA’로 부른다고 한다. ‘HIRA’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Health Insurance Review & Assessment service)의 약자다. 김선민 이사는 “처음에 OECD에 갔을 때 OECD 관계자들은 물론 각국의 구성원들이 심평원의 역할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심평원을 약자인 HIRA로 불러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무국 사람들은 적어도 HIRA가 뭔지 안다. 정말 뿌듯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세계인들이 김선민 이사를 통해 한국의 심평원 역할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김선민 이사는 인터뷰 내내 ‘우리나라’, ‘심평원’이라는 키워드를 주어로 많이 사용했다. 그만큼 김 이사의 겸손한 성품은, 그녀를 OECD의 ‘한국 알리미’이자 대한민국의 ‘건강지킴이’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의장을 맡아 이같은 행보가 계속 된다면, 훗날 OECD를 포함한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김선민 의장을 약자로 부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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