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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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가운데 의료계와 게임업계의 갈등이 불붙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양측의 충돌은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WHO는 최근 게임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했다. WHO는 게임중독에 대해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중독성이 지속되고,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계속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는 WHO 회원국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WHO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

이 같은 WHO의 결정에 보건복지부도 이튿날 국내 도입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게임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국회 제1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게임은 지금 현대판 '마녀'로 낙인 찍히고 있다”며 “젊은 세대의 ‘그릇된 문화’가 돌을 맞고 있다. 19세기에는 소설이 그 대상이었다. 20세기에는 TV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임이 소설이나 TV와 다른 점이 있다면 셋 중 유일하게 질병 코드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라며 “소설의 독자들은 과한 몰입으로 인해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구분 능력을 잃고 건설적이지 못한 분야에 힘을 쏟는다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소설이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설 읽기를 권장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낙인찍기’라는 의견이다.

게임 업계 내부의 분위기는 더욱 심상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중독이 질병이라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다”며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결과가 도출된 이후에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 수조원의 손실로 인해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게임장애 질병코드화가 진행된다면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이 위축돼 3년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질병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의학적 연구와 치료 필요성에 따라 결정된다”며 “산업적인 측면에서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울증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한다고 코드분류를 하지 말자는 뜻인가”라고 반문했다. ‘게임산업 위축’이 오더라도 게임중독에 대한 ‘질병 지정’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

이뿐만이 아니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주무부처 간 갈등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복지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WTO의 게임중독 질병 지정 논의를 공식화하려 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즉각 협의체 불참 의견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뒤늦게 복지부와 문체부의 ‘엇박자’ 조정에 나섰지만 갈등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회의 이후 입장을 선회해 복지부 주도의 민관협의체에 참가할 예정”이라면서도 “하지만 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다. 게임산업 업계 위축이 우려된다는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체부 산하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도 복지부의 방침에 대해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게임을 일방적으로 질병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 마약과 술에 대한 중독 문제는 수 백년 동안 논의됐지만 게임은 역사가 짧다. 오히려 게임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여가 수단이다. 병적 측면에서 중독으로 다루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국내 2천만명 게임 인구를 잠재적 정신질환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은 “게임이 아닌 ‘게임중독’이 문제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의 권준수 이사장은 “WTO의 결정의 핵심은 게임이 아니고 중독이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먹지만 알콜중독환자는 극히 일부다. 중독은 금단 증상 때문에 자꾸 술을 찾게 되는 것인데 게임도 다르지 않다. 일종의 문화이지만 과몰입을 하면 사회생활이나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질병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독 현상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며 “자극이 오면 보상 회로가 작동하는데 여기서 도파민은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이다. 자극을 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쾌락을 주는데 자극에 약한 사람들은 게임을 하든 도박을 하든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가 몇 배나 크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이런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임 업계의 또 다른 논리는 게임중독이 오히려 ‘관계의 문제’에서 촉발됐다는 것이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중독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친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게임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지면 왕따로 취급하는 세상이다. 게임중독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나온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다.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상담과 교육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영수 건국대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 역시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들이 중독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스마트폰 사용에 의존적인 아이들이 대인관계나 가족 친밀도가 낮은 연구결과를 확인했다. 게임의 문제로 센터를 찾아오지만 정작 다른 진단을 병행해야 하는 정서행동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게임중독을 질병 분류가 아닌 심리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환경적 측면’으로만 게임중독을 치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신과전문의 출신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밤새 게임을 해도 회사 업무를 능숙히 소화하면 중독이 아니다. 아이들이 게임으로 부모와 갈등한다고 전부 중독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게임중독은 게임으로 인해 가정과 사회에 문제가 생겨야 한다. 가족관계와 환경만으로 치유할 수 없는 극심한 게임중독은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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