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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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바이오 헬스 분야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가운데 인체 장기를 모사한 조직칩이 주목 받고 있다. 조직칩이 신약개발의 필수과정인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일고 있는 반면 약사사회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혁신 신약·의료기기 분야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바이오 분야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를 2025년까지 연간 4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공개했다.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엔 다소 생소한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조직칩’이다. 정부는 앞으로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을 대신해 신약 물질의 효능과 독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인체 장기를 모사한 조직칩을 개발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직칩은 간·신장 등 장기에서 추출한 세포와 조직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인체 장기의 기능과 특성을 모사한 칩이다. ‘칩’이 장기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하버드대학 등 연구진들은 최근 조직칩 관련 회사들을 설립했다. 이들 회사는 머크, 노바티스 등 글로벌 빅파마와 조직칩의 상업화를 위해 공동 연구를 수행중이다. 2017년 9월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연간 150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 조직칩 개발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조직칩은 낯선 연구 분야가 아니다. 지난해 8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 의과대학, 스위스 바젤대학 의대와 공동으로 생체장기모사 연구센터를 개소하고 조직칩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물론 빅파마들이 조직칩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뭘까. 신약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줄이기 위해서다.

홍익대학교 생명공학과 성종환 교수는 지난 2017년 ‘보건의료산업에 활용 가능한 장기칩 기술동향’ 논문을 통해 “다양한 신약후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승인받기 위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신약 1개당 개발 비용은 약 8천억 원에서 1조 원의 비용과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10억 달러 당 성공적으로 개발되는 신약의 개수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즉, 신약개발의 ‘가성비’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모델의 한계’ 때문.

성 교수는 “보통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물모델을 사용한다”며 “하지만 동물 반응이 인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B형 간염치료제 ‘피알루리딘’은 동물 실험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환자가 급성 간 손상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반대로 인공감미료 ‘사카린’의 경우 생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는 방광암을 일으켰지만 인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의 ‘미스매칭’이 신약 개발의 장애물로 작용해왔던 것.

울산과학기술원 생체장기모사 연구센터의 강주헌 교수도 27일 팜뉴스와의 통화에서 “동물실험에서 독성 테스트를 통과해도 임상단계에서 독성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반대로, 특정 약물이 사람에게 치사량이지만 동물에게는 아닐 수 있다. 신약개발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동물실험을 둘러싼 논란도 조직칩 연구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성 교수는 “실제 동물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의 숫자는 연간 전 세계적으로 2억 마리, 국내에서도 4백만 마리 정도가 죽는다”고 지적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 과정에서 파생된 ‘윤리적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직칩이 동물실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특정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해 칩 위에 올리면, 실험으로 실제 장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강주헌 교수는 “조직칩은 인체 장기의 일부분을 모사해서 체외에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폐의 일정 부분을 칩을 이용해 재현하는 방식이다. 미세먼지 등이 폐로 들어왔을 때 폐부종이 일어나는 현상까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진전된 상태다”며 “사람 세포를 직접 사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면역반응도 확인이 가능하다. 담배를 피우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의 폐 상기도 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직칩에 의한 사전 ‘스크리닝’이 동물실험의 부정확성과 윤리적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

성종환 교수 역시 “특정 물질이 간에서 독성이 있는 물질로 변환된 후에 다른 장기로 이동할 경우, 인체나 동물 모델에서 독성여부를 추적하기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장기칩 기술에선 확인이 가능하다. 필요에 따라 특정 장기를 빼거나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가설을 세워서 테스트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특정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해 칩 위에 올리면, 실험으로 실제 장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신약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다만 약사사회 일각에서는 조직칩 기술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약은 물질이 몸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물실험은 약물의 최대 용량과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독성의 용량 평가 측면에서 조직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조직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과기부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조직칩은 현재 동물 실험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동물실험에 대한 우려들이 계속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부처 차원에서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신약 개발 과정에서 ‘스크리닝’ 기술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지원했던 사업을 하나로 통합해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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