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국을 중심으로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을 뛰어넘을 새로운 치료제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관련 산업의 성장은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글로벌 신약개발의 트렌드는 2000년대 전통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오리지널 치료제의 특허가 만료되면 바이오시밀러가 전세계 의약품 시장을 휩쓸고 있는 까닭이다. 기존 약제 형태가 아닌 단백질을 투약하는 방법이 의약품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제3의 물결’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첨단 기술과 의약품을 접목한 디지털 치료제가 주인공이다. 알약 형태의 전통적인 신약개발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형태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치료제는 임상시험을 거쳐 치료효과를 검증받고 FDA 등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거쳐 의사의 처방을 통해 환자에게 제공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약과 같다. 하지만 환자는 알약이나 가루약, 주사제의 형태가 아닌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된 치료용 소프트웨어로 치료를 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기존 신약에 비해 크게 절감될 수 있다. 전통적인 의약품과 달리 독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디지털 치료제 시장의 선두주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리포트’에 따르면, 2017년 피어 테라퓨틱스의 스마트폰 앱 ‘reSET’은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FDA는 ‘reSET’의 대마, 알코올, 코카인 중독 치료 효과를 인정하면서 ‘디지털 약’의 지위를 부여했다. 회사 측이 효과 검증을 위해 무작위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외래상담치료와 병행할 경우 치료 효과가 22.7%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를 제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미국에서 약물중독 환자를 진료 하는 의사는 ‘reSET’ 앱을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다. 환자는 앱스토어에서 reSET앱을 다운받아 약물사용, 갈망, 유발인자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입력하고 인지행동치료에 기반한 온라인 상담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게임을 이용한 디지털 치료제 사례도 있다.

미국 아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社는 2017년 12월 소아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치료용 비디오게임 ‘AKL-T01(프로젝트명 Evo)’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환자들의 주의력지수(API)가 상승하는 치료효과를 통계학적으로 확인했다는 것.

환자는 아이패드로 외계인을 조정하는 AKL-T01을 수행하면, 특정 신경회로에 자극이 가해지는 치료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AKL-T01은 FDA에서 허가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국내 한 약학대학 교수는 “그동안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시청각 자극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됐다”며 “이런 치료의 연장선에서 비디오게임을 통해 한꺼번에 시청각 자극을 유도해 ADHD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에 대한 우려도 있는 법.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디지털 치료제는 결국 자가 설문 형식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며 “약물 중독은 외부요인에 따라 치료 효과가 그때그때 다르다. 환자에 대한 설문을 통한 효과 입증에 기본적으로 한계가 크다”고 밝혔다.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문세영 부센터장도 최근 펴낸 “디지털 의료, 헬스케어의 경계를 확장하다”라는 보고서에서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문세영 부센터장은 “디지털 의료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일상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면서 “디지털 기술은 생물화학 작용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생체반응 없이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활동량, 심박수, 체성분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미국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그야말로 ‘쑥쑥’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17억3,000만달러에서 연평균 20%씩 성장해 오는 2025년 86억7,00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규모가 약 5배 정도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반면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미미한 수준이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는 물론 제약사들의 전반적인 관심조차 저조하다.

앞서의 약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디지털 치료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없다”며 “국내 일부 뇌신경과 교수들이 관련 연구를 진행중이지만 전문가도 극소수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학과 약학을 바탕으로 컴퓨터 과학과 전자기적인 연구를 병행해야 개발이 가능하다. 그만큼 까다로운 분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디지털 시장의 전망은 상상할 수 없이 밝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가 디지털 치료제에 관한 개념을 정의하고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하는데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일정한 표준이 없기 때문에 벤처기업들과 국내 제약사들이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