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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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 등 수수료 가격은 여전히 병원마다 기준도 제각각이다. 환자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보건당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 그 사이, 병원들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진단서 장사’에 나서고 있다.

병원은 하얀색 서류로 가득한 곳이다. 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고 ‘아픔의 기록’을 문서의 형태로 남긴다. 수북이 쌓인 서류 중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진단서다. 병원의 모든 절차를 마친 환자가 마지막으로 원무과로 향하는 까닭이다.

학교, 직장 등 수없이 많은 기관들이 진단서를 요구한다. 환자는 원무과에서 ‘아픔’을 ‘증명’해주는 서류인 진단서를 발급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원무과 직원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종이 한 장’의 가격이 만 원에서 10만 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도 할 말이 있다. 의원급 병원의 한 원장은 “진단서는 주민등록등본과 다르다”며 “의사의 책임을 명시한 서류가 진단서다. 의사는 진단서를 통해 소송 등 향후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혹시 잘못되면 전부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한 서류라서 비용을 받는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뇌질환으로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닌 A 씨는 “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할 때마다 진단서 비용만 5000원을 내는데 너무 비싸다”며 “최근엔 2만 원으로 올라서 병원에 따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병원은 수술비, 입원비는 전부 벌어 가는데, 퇴원할 때 서류에까지 돈을 받는다. 너무 아깝다. 비용도 병원마다 들쭉날쭉이다”고 설명했다.

환자들 사이에서 그동안 “의사들이 진단서 장사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던 배경이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2017년 9월 ‘의료기관의 제증명 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을 고시했다. 의료기관이 발급하는 진단서(2만원), 사망진단서(1만원) 등 수수료 상한액을 정한 것이다. 병원들이 제 마음대로 진단서 ‘값’을 매기지 말란 일종의 경고 카드였다.

복지부의 고시 이후, 약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8년 6월 2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서울·경기지역 의원급 의료기관 68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비급여 진료비용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진단서 수수료는 5000원에서 최고 3만원까지 가격 차이가 6배까지 벌어졌다. 일반 진단서의 수수료 상한액 2만원을 초과한 수치다.

일부 병원은 1000원인 진료기록사본 수수료로 2만원을 받았고 국문 진단서와 동일한 수수료 상한액 2만원이 적용되는 영문진단서 수수료로 9만원을 책정했다. 치과나 한의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일반 진단서의 수수료를 치과에서는 최저 무료에서 10만원까지, 한의원은 무료에서 5만원까지 받았다. 의사들이 보건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경고를 무시하는 행태가 드러난 셈이다.

‘팜뉴스’ 취재 결과, 심지어 병원들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진단서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B 씨는 최근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전립선염 증상을 겪어온 B 씨는 “병원에서 지난해 진단서를 뗀 경험이 있다. 보험사에 진단서를 내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같은 병명에 똑같은 진단서였다”라며 “하지만 병원은 사본을 줄 수 없다면서 다시 진료를 받고 2만원을 내라고 했다. 진료비까지 합하면 약 4만원이었다. 결국 진단서 발급을 포기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진단서 등 제증명서 사본 비용은 1천원이다. 환자가 원하면 의사는 진단서 사본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B 씨는 비뇨기과 의원에서 진단서 사본을 받을 수 없었다. 병원 측이 보건복지부 고시를 지키지 않고 환자들에게 원본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B 씨가 진단서를 추가로 발급받기 위해선 약 40배의 비용을 물어야한다. ‘법규’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병원들이 수수료 상한액 규정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의료법 45조는 “의료기관은 고시한 제증명 수수료를 초과하여 징수할 수 없다” 명시한다. 하지만 벌칙이나 과태료 등 위반시 처벌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선의 의사들이 수수료 상한액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 중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증명 수수료 부분은 보건복지부의 고시사항이다”며 “진단서 비용이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청구를 받으면 우리는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정보가 모이면 통계를 토대로 안내와 홍보 정도를 진행해왔다. 고시를 위반했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은 복지부에서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이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사이,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은 진단서 사본 발급 방식으로 도마에 올랐다. 서울에 있는 C 대학병원과 D 대학병원은 최근 온라인 진단서 사본 무료 발급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병원은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에게 여전히 1000원을 받고 있다. 50대 이상의 중년층과 노년층이 인터넷 환경에 익숙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형평성에 어긋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전문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률사무소 와이앤코의 제본승 변호사는 “병원진단서는 민·형사 소송에서 매우 중요한 '증명력' 즉, 어떠한 사실의 판단의 증거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증거다”며 “형법에서도 의사가 진단서의 내용을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에 공문서가 아닌데도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처럼 진단서는 중요한 서류다. 별도로 의료 소송을 하지 않아도 직장 등에의 병가, 산재처리, 보험처리 등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서류다”며 “발급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거나, 적어도 상한을 두어서 환자들에게 너무 많은 비용 부담이 주어지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발급 수수료 관리를 위해 의료법상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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