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부정적 뉴스에는 ‘리베이트’란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다. 리베이트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사건은 반복됐다. 보건복지부가 1년여 전 ‘지출보고서 제도’라는 카드를 빼든 까닭이다. 지출보고서 양식에는 제약사뿐만 아니라 의사의 서명도 필요하다. 의약품 공급자가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을 파악하기 위해 의사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본지 조사 결과, 일선 의사들 사이에서는 지출보고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는 지난해부터 시행된 한국판 선샤인 액트의 1년을 들여다 보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정책의 허점을 짚어보는 한편 현장에서 들리는 MR들의 고충과 제약 영업마케팅의 변화를 소개한다.

 

>> “의사 서명, 선택이라고?”…K-선샤인 액트, 사실상 ‘무용지물’

지출보고서 이해 부족, 제도 시행 초기부터 ‘삐그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해부터 시행된 지출보고서 작성 마감일은 3월 말이다. 하지만 지출보고서 제도의 또 다른 주체인 의사의 현실은 달랐다. 제약사가 사인을 받아야 하는 대상인 의사들 대다수가 지출보고서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지출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의사들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학회에 참석하지 않는 의사들은 내용을 잘 모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학병원의사들은 인지하고 있지만 제약사와 정기적으로 만나지 않는 개원의들도 많다. 이들의 경우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보건당국이 지출보고서 시행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료인들의 ‘서명’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규정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제도 시행을 앞두고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료인의 직급과 성명, 서명까지 기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의료인의 서명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때문에 복지부는 인수증 등 기타 증빙자료로 의사의 서명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결국 의료인 서명에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은 결과, 의사들의 지출보고서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입법과정에서 지출보고서 서식을 만들 때 처음에는 서명란이 들어가 있었다”며 “일관성을 기준으로 하면 의사들의 서명을 전부 받게 해야 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인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 서명을 선택적으로 해야한다고 정책을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제약사 어려움 토로…서명 요구에 의사는 ‘께름칙’

기업 규모별로 보고서 ‘룰’도 제각각…영수증 대체 선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출보고서 시행으로 제약사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업사원들 사이에서 해당 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업 사원은 “과거에는 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회사에 신고하면 그만이었다”며 “하지만 요즘 의사들과 식사 후에 지출보고서 작성에 대해 말하면 의사들이 께름칙한 기분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영업사원과 의사들이 서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영업사원 역시 “의사들도 지출보고서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을 꺼리다보니 암묵적으로 작성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밥을 먹을 때 어물쩍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지출보고서 제도가 의료진과 영업사원이 만난 현장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또 지출보고서 시행 이후 업무가 과중됐다고 증언했다. 식사 이후 지출보고서 서식 작성으로 업무가 늘어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영업사원은 “영업하면서 의사들에게 밥을 사고 난 뒤에 또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 지출보고서 시행 이후 하루를 꼬박 내근해야 하는 날이 늘었다. 보통 영업일이 약 19~20일 정도 있는데 지출보고서를 쓰느라 하루가 날아갔다”고 토로했다. 본연의 영업보다 서류 작성 업무에 불필요한 시간이 많이 투여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지출보고서 제도가 제약사별로 제각기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의사 서명 부분에 대해 회사마다 ‘룰’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한 영업 사원은 “대형제약사 같은 경우에는 서명을 받지만 중소 제약사들은 다르다. 어떤 중소제약사는 서명을 요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특히 소규모 제약회사들은 지출보고서 작성에 대해서 압박을 받지 않는다. 서명을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 부담감을 적게 느끼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이는 일부 제약사들이 의사 서명 대신 영수증을 제출해 지출보고서 작성의 증거로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 지출보고서 업무분장 혼선…조직 내부서 책임 기피 현상

제품설명회 취소 사례도, 보고서 작성 “처음부터 다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복지부가 지출보고서 가이드라인에서 제약사 내부의 업무 분장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혼란도 생겼다.

업계관계자는 “지출보고서가 재정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파이낸스(finance)팀이 맡을 것인지, 준법과 연관된 사항이라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쪽에서 맡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며 “지금은 대부분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팀)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제약사 내부에서 지출보고서 제도에 관한 업무를 맡지 않으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출보고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프로세스다. 지출보고서 제도를 맡으면 팀의 업무가 늘어나 서로 미루려고 한다”며 “업무 과중도 문제지만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 부서 전체가 떠안아야 하는 위험부담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제약업계에서는 제품설명회 등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운영상의 고충이 있다는 분위기가 읽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설명회의 경우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최근 설명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교수 10명 중 8명이 왔다. 원래 10명으로 신고한 상태였다. 이런 경우에 다시 보고서를 써서 수정해야 해야 한다.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출 보고서 제도 시행 이후 일부 제약사가 수개월 동안 공들인 제품 설명회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의사가 3명이 참석하기로 약속한 행사에서 갑자기 2명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 회사 내부적으로 제품설명회에 쓸 수 있는 비용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지출보고서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결국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 다국적사, 본사 시스템 우선 적용…양식 연동엔 고민

국내사, 증빙서류 첨부 절차 자동화 시급 “업무 가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렇다면 제약회사들은 지출보고서 ‘양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다국적제약사들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행 중인 ‘선샤인 액트’에 따라 지출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들 다국적 제약사들은 제도 시행 이후 대체로 본사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양식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지출보고서 양식에 복지부의 지출보고서 서식을 연동할 경우 비용 절감, 일관성 등 여러 가지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국적제약사들은 복지부가 요구한 국내 지출보고서 관련 법적 요구사항이 본사의 기존 양식을 충족하는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물론 일부 다국적제약사에선 자체 규모가 본사의 양식을 이용할 만큼 크지 않고, 관련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경우 다른 해법을 찾고 있다. 이들 제약사는 복지부가 제시한 지출보고서 작성 양식에 맞춰 엑셀 서식을 사용하거나 별도 지출보고서 양식을 개발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국내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지출 보고서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 중이다.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시스템 개발을 할 수 있는 IT 조직을 갖췄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현재 결재 상신부터 사후보고까지 원스텝으로 지출보고서 관리와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며 “개발초기에는 직원들이 쉽고 불편함 없이 운영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지금은 관리와 모니터링의 효율화에 중점을 두고 시스템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동안 지출보고서를 운영해 온 과정에서 불편하거나 개선할 점을 파악해 삭제하거나 추가적으로 필요한 프로세스를 오는 6월 이내로 구축해 적용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견급 제약사들은 법인카드 비용 처리의 승인과 증빙서류의 첨부 절차를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법인카드 사용내역 전표를 입력할 때 시스템적으로 연동이 돼있지 않아 하나를 입력하고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따로 두 번 작업을 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전표를 입력하면 한 번에 지출보고서 작성이 돼야 한다. 시스템의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고 밝혔다.

>> 온라인 및 모바일 활용 등 실행 가능한 자구책 마련

지출보고서 리스트 전용 홈페이지 개설로 투명성 강화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출보고서 제도 시행 이후, 전반적으로 투명하고 윤리적인 영업환경 구축을 위해 제약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제약사들은 지출보고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의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식을 도입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영업 전략도 바꾸고 있다.

한 영업사원은 “지출보고서 작성 완료를 앞두고 최근 들어 이슈가 많이 되면서 작년의 누락된 부분을 전부 작성했다”며 “초기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작성하기 어려웠지만 제약사 차원의 교육이 진행되면서 정착이 됐다”고 전했다.

다른 영업 사원도 “본사 차원에서 현장의견을 수용하고 영업활동에서 불편함을 없도록 하기 위해서 지출보고서와 관련된 테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있다. 지출보고서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제약 업계는 영업사원들의 전문성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출보고서 제도 도입 이후 더 이상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했다”며 “영업사원들 전문성 등에 역량을 키우는 부분에 투자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각의 영업사원들이 의사들을 향해 물질적인 향응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영업사원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월등히 잘하면 신뢰를 줄 수 있다”며 “의약품별 질환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사원들을 교육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케팅 측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제약사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의사들을 접촉하는 전략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영업사원이 의사를 직접 만나 질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마케팅 전략의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SNS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다. 소셜 네트워크 채널인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통해 페이스 투 페이스(face-to-face) 방식을 벗어나 시간과 장소, 지역에 제한 없이 의료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일부 다국적 제약사는 의료진들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출보고서 작성 내역을 온라인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 중이다.

다국적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학술대회처럼 큰 규모의 행사에서 비용이 발생하면 행사 직전에 회사 시스템에서 승인을 받고 진행해야 했다”며 “지금까지 시스템에 입력된 것들을 한꺼번에 모아 의료진들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툴을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미 시행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제약사가 제공한 경제적 이익과 관련된 데이터를 의사들이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 향후 서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앞서의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지출보고서와 관련된 리스트에 관한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것”이라며 “의료진들이 내역 공개를 요청할 경우 개인아이디를 발급해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사가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