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흥복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전무]

의료기기업체가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 내역을 모두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경제적이익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가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하지만 한국판 ‘선샤인 액트’로 불리는 이 제도에 대해 아직도 세부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의료기기업체들이 많지 않아 시행 초기부터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본지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나흥복 전무를 만나 그간 지출보고서 의무화를 대비하기 위한 협회 차원에서의 준비과정을 들어보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업계의 반응과 향후 전망을 정리했다.

▶▷ 의료기기 업계, 지출보고서 의무화 ‘우려’

지난 2016년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할 당시 ‘경제적이익지출보고서’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업계에서 기존 운영되던 공정경쟁규약을 스스로 강화함으로써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투명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하자는 의견도 내놨지만 결국 올해부터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가 본격 시행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출보고서 작성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 일단 지금까지 모든 영업활동에 대해 일일이 기록한 회사는 많지 않았을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일부 회사들이 제도권에 들어와 시스템에 잘 적응하겠지만 대다수 소규모 업체들의 경우 정부 시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기업체는 약 5천개소이며 판매업체까지 더하면 약 5만개 이상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각자 환경에 맞춰 지출보고서를 작성·보관하기 위해 글로벌 본사 웨어(ware)를 가져다 쓰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전문업체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하거나 자체 제작하는 회사, 심지어는 아직도 종이문서로 대체하는 곳까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의료기기협회 차원에서 모든 회원사를 대상으로 지출보고 의무사항에 대해 홍보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왔지만 시간과 인력 등의 한계로 충분하지 못했다.

▶▷ 지출보고서 작성부담 ‘페어페이메드’로 해결

협회는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 이행 시 기업의 경영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지출보고서 작성시스템 ‘페어페이메드’ 개발에 착수했다. 기업이 공정경쟁규약을 준수하면서 동시에 원활한 지출보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물론 이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협회 차원에서 업체들의 정보를 쌓아두고 있는 자체가 위법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민간업체를 활용하게 됐고 모든 정보는 해당 업체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페어페이메드’는 법에 규정하는 지출보고서 양식에 맞춰 간편하게 기재가 가능하며 협회에서 운영 중인 공정경쟁규약 시스템을 이용하는 업체는 사업자 신고 자료가 ‘페어페이메드’에 자동 등록돼 지출보고서 작성 항목 중 학술대회 지원과 제품설명회의 작성 시 행사명, 일자, 장소, 소요비용 등 전반적인 정보를 재등록할 필요가 없다.

또한 지출보고서 작성시스템을 구축 시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타사 시스템에 비해 월등하게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업체가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구축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적게는 5천만 원에서 부터 최대 2억 원까지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금액적인 부분에서만 봤을 때 의료기기 업체가 ‘페어페이메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아울러 향후 제도권 내에서 각 회원사들의 자료를 검토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할 방침이다.

다만 페어페이메드가 아직은 100% 완성된 게 아닌 데다 시범운영 되고 있는 만큼 협회 차원에서 보다 빨리 홍보에 나서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속한 시일 내에 시스템에 대한 공지를 통해 기업 입장에서도 시스템권으로 들어올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할 예정이다.

▶▷ 韓 의료기기산업 신뢰성 확보, 국제적 위상 제고

최근 열린 APEC 미팅에서는 협회 윤리위원회가 직접 참석해 우리나라 공정경쟁규약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당시 해외에서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윤리성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정부의 노력과 함께 업계도 규약 자체를 매우 엄격하게 만들어 놓은 만큼 국제적으로도 한국 의료기기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또 최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 Forum, IMDRF) 정회원국으로 가입이 승인됐다. 이는 의료기기규제분야에서 국제적 지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의료기기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현재 글로벌 의료기기산업에서 지출보고 의무화를 하는 곳은 사실상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협회 주도로 지출보고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그 만큼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것으로 이는 한국 의료기기산업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유통질서 확립 기대 … 실수 누락시엔 ‘선처’ 당부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의 규모가 각자 다른 만큼 준비과정과 여건에 있어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 한국판 선샤인 액트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진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제도가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의료기기산업에 건전한 유통질서가 확립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회사가 기록을 유지·보관하는 과정에서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실수로 지출 내용을 누락했을 때 부득이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이다. 물론 회계연도 종료 후 일정기간 내에 기록을 유지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항상 기록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나면 누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 법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종의 선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사실 공정경쟁규약에서도 나타났듯이 시스템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업체들 대부분은 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곳들이다. 문제는 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들의 경우인데 이들 업체들로 인해 선의가 피해자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

협회는 의료기기업계의 제도 이행도를 높이는 데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에 나설 것이며 모든 채널을 총동원해 지출보고서 작성에 대한 업계의 고충을 파악해 내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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