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돌 특집Ⅱ] 선택 아닌 필수 ‘오픈 이노베이션’
글로벌 바이오텍의 파워

이광희 박사(사노피 R&D 부문실장) 

여기 하나의 바이오텍 회사(Biotech Company)가 있다.
1988년 회사 설립 후 올해까지 美 FDA 승인 받은 신약 4개를 보유하고 있고, 2014년 연 매출액 28억 달러에 직원 수는 약 3,000명에 달한다. 게다가 현재 임상시험 중인 과제 수가 총 13개로 이 회사의 미래도 창창하다고 할 수 있다.

美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The World’s Most Innovative Companies)’ 2015년도 순위에서 미국의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Tesla)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기업. 사이언스(Science magazine)가 생명공학 및 제약사에서 연구직으로 종사하는 수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라성 같은 글로벌 제약회사, 바이오텍 회사를 누르고 연구직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 타이틀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으로 차지한 회사.

그리고 2012년 8천 1백억 달러로, 전 세계에게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R&D 책임자를 가지고 있는 회사. 평소 해외 바이오텍 회사의 현황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이 회사가 어디인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대표적 바이오텍 회사 주목

이 회사는 미국 뉴욕 주 Tarrytown에 본부를 두고 항체 기반 바이오 신약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허셉틴(Herceptin), 리툭산(Rituxan), 아바스틴(Avastin) 등으로 유명한 제넨텍(Genentech), 비리어드(Viread), 타미플루(Tamiflu), 소발디(Sovaldi) 개발사인 길리어드 (Gilead Sciences)를 이은 유망 바이오텍 회사의 출현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외에도, 사노피(Sanofi)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자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이 미국계 바이오텍 회사가 사노피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전략의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 중 하나로서 사노피의 임상단계 파이프라인의 다섯 개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미 FDA 승인을 받은 PCSK9(Proprotein Convertase Subtilisin/Kexin type 9) 타깃의 새로운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사노피-이 회사 간 오픈 이노베이션 협력의 결과물이다. 물론, 사노피의 오픈 이노베이션 파트너는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미국계 바이오텍 회사인 이뮤노젠(ImmunoGen)과의 협력을 통해 치료용 항체-약물 결합체(Antibody Drug Conjugate, ADC)를 개발 중이며 사노피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 중 4개를 여기서 수혈 받고 있다.

작년에 한미약품과 체결한 두 건의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 프로젝트도 현재 SAR440067(LAPSInsulin 115)과 SAR439977(Efpeglenatide)이라는 새로운 코드명을 부여 받고 사노피 임상 파이프라인에 위치해 있다. 2016년 2월 현재 사노피 R&D 파이프라인에 있는 46개의 프로젝트 중 50% 이상이 외부와의 협력 또는 파트너십에서 유래한 것이다.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

R&D 생산성 저하가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학계, 바이오텍, 또는 다른 제약회사와 공동연구, 라이선스 계약 등의 유형으로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뿐더러, 사노피에 국한된 사례만도 아니다.

최근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른 글로벌 제약회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2014년 말에 FDA로부터 승인 받아 전세계적으로 면역항암제(Immune-oncology) 붐을 불러일으킨 흑색종, 폐암 치료제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교토대에서 초기 연구가 진행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일본계 제약회사 오노제약(ONO pharmaceutical), 미국계 바이오텍 회사인 메다렉스(Medarex)가 연구개발에 참여했으며, 2009년 BMS가 메다렉스를 인수함으로써 해당 글로벌 제약회사의 파이프라인에 편입됐다.

미국의 바이오텍 회사인 길리어드를 2014년 기준 전세계 톱10 제약사에 이름을 올리게 하는데 혁혁한 기여를 한 혁신적인 C형 간염 치료제도 그 시작은 미국 뉴저지에 기반을 둔 회사인 파마셋(Pharmasset)에서 이뤄졌다. 2011년에 파마셋을 인수하면서 길리어드의 파이프라인에 진입했다.

최근의 예는 아니지만, 제넨텍도 로슈(Roche)가 1990년에 지분 확보, 2009년에 완전 매입한 케이스로, 2015년 기준으로 보면 해당 그룹의 전체 매출액의 40% 이상이 제넨텍 제품군에서 발생한다고 하니 로슈 입장에서 보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오픈 이노베이션 현주소와 과제

이러한 전세계적 경향은 횟수와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미약품의 경우, 작년 한해 사노피 건 이외에도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에 면역질환 치료제, 베링거 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에 내성 폐암 타깃 항암제, 얀센(Janssen)에는 당뇨·비만치료제 관련 기술을 각각 수출해 총 7개 신약 라이선스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 벤처, 연구기관, 학계 등으로부터 파이프라인을 채울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함과 동시에 한미약품의 경험과 노하우 공유를 통해 한국이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외 국내 제약사, 바이오텍 회사로 범위를 넓혀 보더라도 신약 관련 기술을 국내외 제약 회사 등으로 라이센싱-아웃(Licensing-out)한 사례를 다수 찾을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의 신약개발은 지난 기간 동안의 투자와 각고의 노력으로 일정부분 결실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 향후 십 년, 이십 년 후를 예측해 본다면 어떨까?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바탕으로 항암신약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작년과 같은 역대급 성공이 지속가능한 상태가 되려면 구조적 토대를 탄탄하게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사료된다.

먼저, 오픈 이노베이션을 요리로 보면 중요한 기본 재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바이오텍 회사의 설립 관련 통계를 보자. 2000년 200여개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3개로 떨어졌다고 한다.

제약·바이오 R&D에 있어, 바이오텍 회사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다. 때문에 바이오텍 회사는 파종된 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넘는 기간 동안 노지의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특장점을 개발하고 적절한 타이밍과 주변 환경을 만나서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다시 말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매개로 한 신약개발 생태계에서 바이오텍 회사는 학계에서 나온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신약 타깃을 확인·검증하고 신약후보물질을 발굴·최적화하여 비임상단계까지 혹은 초기 임상단계까지를 담당한다.

성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기존 바이오텍 회사를 둘러싼 생태계에도 발전의 여지가 크다. 바이오텍 회사, 벤처 캐피털 (Venture Capital), 제약회사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잘 구축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이나 보스턴 지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벤처 캐피털은 벤처 캐피털대로, 바이오 벤처는 바이오 벤처대로, 제약회사는 제약회사대로 애로 사항이 있다.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바이오 벤처가 신약연구개발에 성공해 여기서 나온 투자 이익금과 신약 개발 인력들이 다시 새로운 벤처의 설립에 재투자되는 등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상술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케이스들은 주로 외부 제약회사, 바이오 벤처, 학계에서 개발된 프로젝트로 자사 파이프라인을 채우는 라이센싱 인-라이센싱 아웃 형태이다.

그러나 오픈 이노베이션에는 라이센싱 인-라이센싱 아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 기관간의 공동연구를 포함한 여려 형태가 있다. 금액적 측면에서 훨씬 덩치가 작고, R&D 초기 단계에 주로 해당하므로 프로젝트의 최종 성공여부가 불확실하고, 상업화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라이센싱 인-라이센싱 아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지만, 각 기관들의 노하우가 공유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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