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상무(SK케미칼) 

국내에서 유통되는 백신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바로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수입백신과 국내에서 제조하는 제조백신이다. 이 둘의 경계에 있는 백신은 최종원액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국내에서는 충진 시설에 충진(vial filling)을 하게 되는 경우이다.

주사제의 규정상 필링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제조원이 되므로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지만 국내 제조에 속한다.

백신의 국내자급률에 대한 착시현상은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진다. 1990년대 말부터 벌어진 수입백신의 약진, 2009년 신종 플루 발생 이후의 플루 백신시장의 국내생산 가속화로 인해 이 최종원액의 수입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국내에서 오랜 전통의 상당수는 자체적으로 원료를 생산한 적이 전혀 또는 거의 없이 이 규정을 이용해 정통 국내 제조사로 회사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비단 백신 뿐 아니라 다른 케미컬 의약품도 알약을 드럼통으로 들여와 국내에서 포장을 하면 순수 국내의약품이 된다.

제약주권을 부르짖고, 백신주권을 부르짖는 국내 제약업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씁쓸한 일면이다.

국내 유통 수입백신의 문제점

백신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제품수가 아니라 DTP, 일본뇌염백신 등의 식으로 품목별로 따지면 많이 잡아봐야 전 세계를 통 털어 아직 30여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내에서 허가되는 백신의 경우, 신약으로 허가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입백신은 대부분의 경우 가교대상이 아니었다. 신약으로 분류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수입백신은 가교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었다. 식약처의 규정이 `x`에서 ‘세모’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단 진입장벽은 높아졌지만 국내백신 산업계의 혼란기를 틈타 1990년대 말부터 수입백신은 한국에 무혈 입성했다.

기존의 국내 백신 생산업체들은 보유하고 있던 제품들을 서둘러 취하하고 사업을 접는 단계에 있었다.

민족기업을 자처하던 한 국내의 생물학적제제 강자는 백신 시설까지 포함해 영업을 뺀 나머지 비즈니스를 아예 해외의 벤처회사에 매각했었다.

자기 제품들을 처분하고 없애버린 국내 제약사들은 외자계 제약사의 국내 영업파트너가 되려고 서로 경쟁을 벌였고 일단 선택받으면 충실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부담이다. 과거 백신접종을 할 때보다 가격이 몇 배 씩 상승했고 심지어 십만 원대의 백신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간 사정이 조금씩 개선되긴 했지만 한국은 오랜 기간 NIP(국가예방접종,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 백신의 확대에 매우 인색한 국가였다.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질병의 예방은 특히 고가백신으로 예방되는 질병의 예방은 본인 책임이었다.

심지어 Hib의 경우, 90개국이 NIP에 포함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았다. 어쨌든 최근에는 15개 종류의 백신이 NIP에 포함됐고 HPV백신까지 내년부터 포함이 될 예정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NIP에 참여하는 백신이 대부분 수입품이라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프리미엄급 백신이 아닌 DTP, MMR, 일본뇌염, A형간염, 일본뇌염 등 기초 중에 완전 기초에 들어가는 백신이 모두 수입품이며 대부분은 생산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공급이 제때 안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이 국내에서 생산되기 전까지 독감백신의 글로벌 빅 플레이어들은 매년 초가 되면 국내 백신업계에 흉흉한 소문을 퍼뜨렸다.

올해는 무슨 무슨 균주가 잘 자라지 않아 아마 한국에 최종원액 공급량을 대폭 줄이거나 공급을 못할 것 같다는 등등. 정확히 10년 동안 동일한 소문이 되풀이 됐었다. 그러면서 공급가격은 꾸준히 올렸다.

소문이 돌때마다 국내 제약사들은 웃돈을 얹어주면서라도 자기 할당량을 더 확보하려고 경쟁을 벌였다.

90년대 말 300만 도스이던 인플루엔자 시장은 그 후 1400만 도스까지 커졌다.

정확히 이 끝이 없던 도돌이표는 국내에 독감백신 원액 공장이 세워진 이후에 사라졌다.

국내 생산 백신의 문제점

국내에서의 백신생산은 지난 1876년 검역 및 방역에 관한 제도시행이 이루어진 이후, 1880년 지석영 선생 주도로 설치된 우두국에서 생산한 것이 시작이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시기를 거쳐 국립보건원의 전신인 국립방역연구소는 1960년대 콜레라백신 등 18개 백신을 생산했다.

국가주도로 이루어지던 백신생산이 우리나라에서 민간으로 이양된 것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였고 이 때 주요 품목은 콜레라, 장티푸스, 일본뇌염백신 등이었다.

당시만 해도 방역사업은 관에서 주도한다는 인식 때문에 백신을 이양 받은 기업에 대해서도 민간기업이라기 보다는 잘해야 반관반민, 국영기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백신은 생산하는 것이지 개발을 하는 의약품이 아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백신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도스 당 기준으로 90년대까지 폴리오(소아마비)는 300원, 일본뇌염은 900원 수준에 불과했다.

백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B형 간염백신의 국내 개발이었다.

당초 백신개발이 아니라 시약을 개발하려고 했는데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백신개발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으나 진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어찌됐든 B형간염백신의 개발성공은 국내 백신업계의 인식을 바꿔놓았고 국내에서 생산한 백신들이 해외에 나가 다국적 백신 회사들과도 경쟁을 해 나름 성공의 과실을 따먹기도 한 글로벌 진출의 1세대 백신이 된 셈이다.

국내 백신들의 목표는 A7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그런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국내 백신은 주로 제 3세계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한 용도로 해외로 나가기 위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이오의 국내 한 축인 바이오시밀러와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90년대 후반 이후 10년간 잃어버린 세월을 보내면서 국내 백신회사들은 절치부심했다.

국내 백신회사들이 추구해 온 것은 나름 높아진 가이드라인을 배경으로 GMP를 글로벌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토대로 현재 완제수입하고 있는 백신들을 국산화시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A7 이외지역으로 진출한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문제는 이 대목이다. 15년 이상 외자계제약사들의 눈높이에 길들여진 정부는 글로벌수준을 요구했다.

반면 신규로 백신을 준비하는 업체들은 기존 국내 회사백신들의 경우 국내외에서 controvertial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지배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정부는 업계에 그런 건 쳐다보지 말고 글로벌 수준을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업계는 냉소한다.

개선방안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진입장벽이야말로 현실을 고려해 합리적이어야 하며 반드시 백신주권이라는 대의에 두고 판단을 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사후관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엄격하게 법적용을 하고 정해진 약속을 못 지키면 지킬 때 까지 퇴출시키는 식이다.

공급에 차질이 생겨 접종이 제 시기에 안 되면 국민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수입품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공급이 중단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아마 일종의 정부길 들이기 용일 것이다. 이 품목 제대로 공급받고 싶으면 가격 올려 달라는 무언의 압력일 수 있다. 페널티는 공급에 차질을 빚어 국민건강에 해를 끼친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백신주권이라는 말이 나올 때 같이 등장하는 용어가 글로벌 진출이다.

백신주권은 유사 시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자국영토에 생산능력을 갖추자는 것을 의미한다.
100%는 갖추지 못해도 필요한 때 필요한 물량을 조달해 올 수 있는 것도 백신주권의 한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2020년까지 70%를 커버하겠다는 목표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 사료된다.

문제는 글로벌진출이다. 글로벌진출은 철저하게 기업의 몫이고 업체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다. 국내시장만을 목표로 하는 회사에게 글로벌로 진출하라고 독려할 이유도 없고 동남아수출을 목표로 하는 회사에게 남미시장을 개척하라고 강요할 일도 아니다.

백신주권은 정부, 글로벌진출은 업체가 각각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백신주권은 어설프게 경제논리로 접근할 이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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