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지아/자료제공 아리지안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거듭나고자 올해 새롭게 개장한 인천공항의 2터미널이 개장 200일만에 국제여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개장 전 스마트 기술을 도입했고 예술과 공항이 결합한 아트포트를 추구한다는 등 공항을 소개하는 여러 기사들 중에서 공항 디자인에 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봉황 2마리가 인천공항을 품에 안고 날개를 모아 땅에 내려앉아 한반도 주변을 환히 밝힌다는 의미와 이를 형상화한 디자인인데, 너무 멋지지 않은가. 봉황은 용, 기린,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 중의 하나로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 일컫는다. 모든 조류의 우두머리이며 옛 사람들은 이 새가 천하의 치란(治亂)을 능히 아는 새라고 여겼으며, 이 때문에 훌륭한 임금이 정사(政事)를 맡아 천하가 태평할 때에만 봉황이 출현한다고 믿었다. 황새의 이마, 제비의 턱, 닭의 부리, 뱀의 목을 갖췄다고 하는 봉황은 상상의 새이며, 유럽에서는 독수리가 왕을 상징한다면 동양에서 왕을 상징하는 새는 봉황이다. 중국의 설화집 『산해경』에는 “봉황이 남극의 단혈(丹穴)에서 태어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단혈은 조양(朝陽) 의 골짜기를 가리키며 조양은 곧 태양을 마주하는 것으로 길운의 징조를 상징한다. 또한『시경(詩經)』,『금경(禽經)』에도 봉황이 새의 우두머리이며 매우 높은 곳에 살고 있고 길운을 상징하며 왕을 상징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왕을 상징하는 봉황에 관한 유물이나 기록들이 있는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용과 봉황이 장식되어 있는 칼, 임금의 덕치(德治)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봉래의(鳳來儀)’를 치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등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고종 황제가 1967년 증건하면서 다양한 동물들이 배치가 되었는데, 황제만이 지날 수 있는 계단길인 답도(踏道) 중앙에 새긴 봉황은 무너진 왕권과 국력을 회복하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뒷벽에는 수컷 봉(鳳)과 암컷 황(凰)이 마주보고 있고 그 가운데에 무궁화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는 금빛 문양이 붙어있으며, 청와대 본관 앞의 깃대에는 봉황기가 걸려있다. 이 외에도 봉황문이 새겨져 있는 대통령 시계, 찻잔 등 봉황이 군주, 왕을 의미한다는 것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나온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는 봉황 문양이 들어간 대표적인 유물이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고 향로의 뚜껑 꼭대기에는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백제의 특징과는 달리 화려함을 뽐내는 이 향로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단연 최고라 할 만하다. 서울에는 도성을 둘러싼 4개의 문(사대문)과 그 사이에 자리한 사소문이 있다. 이 문들에는 용들이 그려져 있는데, 북대문과 동대문 사이에 위치한 혜화문에는 용이 아닌 봉황이 그려져 있다. 혜화문 인근이 산림지대인지라 새들이 너무 많아 새들을 쫓기 위해 새의 우두머리인 봉황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 실향민들이 모여 들기 시작한 이곳에 좋은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화합과 평화의 상징인 봉황을 보면서 노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봉기천년(鳳飢千年)이라도 기물탁식(忌物濁食)이라’는 말이 있다. 봉황은 천 년을 굶어도 버려진 곡식을 함부로 먹지 아니 한다는 뜻인데,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귀한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아니하고, 천릿길을 날아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며, 수천 줄기의 샘물이 있다 하더라도 영천(靈泉)이 아니면 마시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고고하고 고귀 한 봉황의 생태를 하나의 문구에 담은 표현으로, 요즘 말로 하면 봉황은 도도하고 자존심이 세다는 뜻이다. ‘추봉청어노봉성 (雛鳳淸於老鳳聲)’은 어린 봉황의 울음소리가 늙은 봉황의 소리 보다 한결 청아하다는 뜻으로 순자가 남긴 청출어람(靑出於藍) 과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언급해 노래로도 만들어졌다는 ‘봉황열반, 욕화중생(凤凰涅槃 浴火重生, 봉황이 자신을 불사른 후 더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난다)도 봉황과 관련된 이야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방시혁 프로듀서의 눈을 봉황눈이라고 하고, 400년 된 소나무에 봉황송이라는 훈장을 주고, 전국고교야구대회인 봉황대기처럼, 어느 분야의 최고를 가리킬 때 봉황에 빗대어 자주 표현한다. 경상북도 안동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산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자 국보 제15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있는 ‘봉황이 머무는 곳’, 봉정사(鳳停寺)가 그 곳이다. 통일 신라 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렸더니 천등산에 와서 머물렀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시 한국 전통문화 체험을 위해 들렀던 곳이기도 하고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직전에 들렀던 곳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 맹렬했던 여름이 가고 일하기 좋고 놀기 좋은, 모든 것이 좋은 가을. 경복궁이나 박물관, 산사 등을 둘러보며 곳곳에 새겨진 문양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옛 선조들처럼 천자(天子)라 불리는 봉황이 출현할 수 있도록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롭기를 빌어보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산책하며 맑고 힘찬 기운을 얻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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