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이쪽에서도 ‘R&D’를 외치고, 저쪽에서도 ‘R&D’를 부르짖는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복지부, 식약처 등 보건 당국은 물론 산자부(산업통상자원과기부), 과기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부처는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 투자(R&D) 확대했다고 공언 중이다.  

하지만 제약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전임상(동물실험) 과정에서 정부의 R&D 투자 방향이 ‘성과 만들기’에 치중해왔다는 지적이다. 전임상 연구 지원의 최종 목표를 ‘임상 1상 승인’으로 잡는 사례가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무분별한 임상 1상 진입으로 실속 없는 R&D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들린다.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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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대형 제약사 임원(RA, 제품 인허가 담당)은 “우리 정부 R&D 지원의 모든 연구가 성공해야 한다는 식의 전제를 깔고 있다”며 “예를 들면, 전임상연구를 지원하면서 1상 임상시험 IND 승인을 결과로 도출해야 한다는 식이다. 흔히 ‘우리나라 R&D 성공률은 100%’라는 농담이 나오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제약사, 대학, 연구기관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비임상 연구 완료”라는 목표 달성만으로 불충분하다. 비임상 연구 완료 앞에 “임상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이란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기관이 R&D 자금 지원한 이후 성과를 발표할 때는 “비임상에서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 물질”이란 수식어를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의 임원은 그러면서 “문제는 독성은 없지만 효과가 약한 물질이 1상에 진입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이라며 “임상 1상에 진입하지 못하면 종국적으로 연구비를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효과가 없는데도 임상 1상에 억지로 들어가는 신약 후보물질이 많다는 얘기다. 상업화 비율도 상당히 낮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론 전임상에서 임상 1상으로 진입하면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전임상에서는 해당 후보 물질에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약이 되지 않는다고 실패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왜 실패했냐‘는 쪽에 초점을 맞춰 그 가치를 깎아내리지만 제약 강국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전임상 과제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할 뿐, 1상 진입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의 신약 개발 관련 R&D 지원 안내문은 “과제신청 시 제시한 성과지표에 대한 목표치를 달성 못한 경우 연구비 환수 및 참여 제한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같은 현실 때문에 제약사 연구원은 물론 대학 교수들이 전임상 연구의 최종 목표를 임상 1상 진입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 

다른 업계 관계자도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이런 방식의 접근은 매우 위험하고 신약 개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예를 들면 KRAS 타겟 치료제(항암제)는 수십 년간 신약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여겨졌다. 국내에서도 KRAS 타겟에 대해서는 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하지만 빅파마 암젠은  KRAS 타겟의 항암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RAS는 인간의 상피세포에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다. 특히 RAS 유전자군 중에서도 KRAS는 가장 많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로 폐암, 대장암 및 췌장암의 발병의 주요 원인이다. 1982년 최초 발견됐지만 약 40년간 KRAS를 차단하거나 억제하는 형태의 신약 개발은 전세계적으로 연이은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암젠은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란 이름의 KRAS 변이성 폐암 치료제를 승인받았다. 도저히 약으로 만들 수 없었다고 여겨진 난공불락의 돌연변이를 표적하는 항암제가 등장한 것. 전 세계 신약 개발 연구자의 시선이 암젠으로 향한 까닭이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KRAS 표적의 신약 후보물질은 당장의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R&D 지원에서 탈락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신약개발의 일반적인 실패율을 반영하는 형태로 전임상에서 임상 1상으로 넘어가는 영역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어도 미충족 수요(unmet needs)가 높은 분야에서는 전임상 과정에서도 파이프라인의 가설을 탐색하는 것을 성과 지표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없는 실패 때문에 루마크라스가 개발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정부가 근시안적인 사고의 ‘성과 만들기’식 R&D 지원을 당장 중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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