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김응민 기자] 신약 후보물질 ‘기술 수출’ 반대편 너머의 단어는 ‘거품’이다. 바이오 기업이 기술 수출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거품론은 여전히 등장한다. 기술 수출의 성과가 부풀려졌기 때문에 거품이 사라지면 바이오 기업의 진짜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시선이다. 

하지만 이런 시선을 초래한 장본인은 주류 언론이다. 기술 수출의 실체가 아닌, 규모와 숫자에만 집착한 나머지 ‘잭팟’, ‘역대급’이란 단어로 투자자들을 현혹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 성과는 평가 절하됐고 투자자들의 기대는 꺾였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와 1조 30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1조 3000억이란 숫자에 집착한 보도 행태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 일부는 불편한 시선으로 에이비엘바이오를 바라봤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진은 이번 계약의 ‘팩트(FACT)’에 주목했다. 특히 이상훈 대표는 인터뷰 과정에서 명확한 팩트와 날카로운 논리를 제시하면서 불신과 의혹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기획 인터뷰 3편을 전격 공개한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팜뉴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팜뉴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지난해 전체 기술 수출 규모는 약 12조였다. 43개 회사가 했는데 업프론트(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를 포함한 12조 중 국내 기업들이 받은 돈은 2400억~2500억이다. 에이비엘바이오가 사노피와의 기술 수출 계약을 통해 업프론트와 단기 마일스톤을 합쳐 약 1440억을 받는다. 지난해 모든 딜 합계의 약 50% 수준이다. ”

에이비엘바이오가 이번에 사노피와 맺은 계약과 과거의 계약들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대표가 내놓은 답이다. 

그는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딜(계약)”이라며 “사람들에게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렇게 받았다’고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다른 바이오 기업에게 미안한 얘기일 수 있지만 대규모 기술 수출을 해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달 22일 사노피를 통해 파킨슨병 치료 후보물질 'ABL301' 공동개발 및 기술 이전에 대한 계약금 7500만달러(약 910억원)를 수령했다. 향후 임상, 허가, 상업화 등 단계별로 ABL301의 개발을 진행했을 때 수령할 마일스톤과 관계없이 일단 수중에 들어온 현금이 약 910억이란 뜻이다. 단계별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도 반환 의무 없는 알짜배기 계약금이다.  

“미국은 특히 기술 수출 계약의 현재 가치를 ‘계약금을 얼마나 받았느냐’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1조 짜리 계약이라면 그것은 미래 가치다. 1조 짜리인데 계약금을 50억도 주지 않았다면 그 물질은 50억 짜리 뿐이 안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술 반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에이비엘바이오는 분명 다르다.”

글로벌 빅파마인 사노피가 'ABL301'에 대한 현재 가치를 약 910억 수준으로 평가하고 이에 대한 계약금을 에이비엘바이오에 지불한 것. 이는 세간의 의심을 단숨에 지워버릴 수 있는 팩트다. 

바이오 기업의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이미 수령한 계약금의 파급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국내 바이오 벤처가 그동안 수령한 규모와 비교해도 역대 1위다. 

“단기 마일스톤까지 포함하면, 전체 1조 3000억짜리 계약에서 ABL301의 가치가 1440억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 내놓아도 올해 안에 TOP 10에 들어간다. 사노피도 비임상 물질로 이렇게 대규모 계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에이비엘바이오에게 의미가 크다. 예를 들면 단순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 뿐만이 아니라 좋은 계약 조건에 싸인(서명)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계약은 에이비엘바이오가 ABL301의 남은 전임상과 임상 1상을 주도한 후 사노피가 임상 2상·3상을 포함한 최종 개발을 진행하고 전 세계 판권을 갖는 구조다. 향후 조건을 만족하면 따라오는 마일스톤까지 수령하면 최대 1조 이상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대표는 ‘현재 가치’를 더욱 주목했다.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 포스팅 당시 좋은 조건으로 진출했다는 것과 같은 뜻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대표는 “맞다. 제가 야구나 운동경기를 예를 드는 것을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는데 선수 연봉이 국내 리그와 같은 수준이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가 좋은 계약에 싸인을 했다고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비공개 입찰제’다. 포스팅이 공시된 선수에게 가장 높은 이적료를 써낸 팀이 원소속구단으로부터 이적이 승인되면 낙찰 이후 해당 팀 이름이 공개된다. 2012년 말 류현진 선수는 포스팅 금액 약 2573만 달러를 제시한 LA 다저스와 협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야구의 자존심을 지킨 계약으로 당시 류현진의 포스팅 금액은 화제를 뿌렸다. 

이 대표는 “지난해 바이오 기업이 맺은 43개의 딜을 살펴봤으면 좋겠다”며 “상반기는 아닌데 하반기는 계약금이 대부분 비공개다. 국내 바이오 기업이 발전하려면 에이비엘바이오처럼, 계약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거래가 앞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계약으로 에이비엘바이오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이유다. 

그렇다면 에이비엘바이오가 빅파마 사노피의 선택을 받은 비결은 뭘까. 마치 류현진이 수년간 갈고 닦은 체인지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한 것처럼, 사노피의 최종 사인을 이끌어낸 결정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건넨 배경이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B’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플랫폼은 뇌 속 보호막인 BBB(뇌혈관장벽)을 투과해서 약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개념이다.

“BBB라는 뇌를 보호하는 막이 있다. 이물질 침투를 막는 것이 몸 안에서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렸을 때 바이러스가 뇌로 침투하면 큰일이 난다. BBB는 이를 막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약물이 0.1%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파킨슨병 등 뇌질환 쪽에 치료제가 없는 이유다. 약물 전달이 되지 않아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 기본 가설이다.”

그는 이어 “수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0.1%를 1%로 정도로만 올려도, 약효를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하는 이유”라며 “로슈, 사노피도 내부적으로 BBB 연구 팀이 있고 암젠, AZ, 제넨텍, 디날리 등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BBB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저희도 6년 전 회사를 설립할 때 BBB를 효과적으로 통과하는 기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플랫폼 개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그랩바디-B는 일종의 펌프 역할을 한다. 삼투압(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현상) 때문에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이같은 원리로 BBB 투과를 위해 이중항체가 필요하다는 것.  

BBB 통과를 위한 이중항체 기술은 에이비엘바이오가 처음 발표한 내용은 아니었다. 로슈, 제넨텍 등 글로벌 회사들은 뇌혈관장벽을 투과하기 위해 트랜스패린(Transferrin) 수용체(TfR)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는 허점이 보였다.  
 

“저희는 트랜스패린 수용체가 아닌, 새로운 타겟 IGF1R을 발굴했고 기존 단독항체의 점을 보완할 수 있는 BBB 셔틀을 개발했다. 그것이 ‘그랩바디-B’ 플랫폼이다. 사노피 등 빅파마가 보기에 그랩바디-B 플랫폼이 적용된 ABL301은 일종의 ‘빅샷’, 결정타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보통 항암제를 개발하면 독성실험(전임상)을 영장류(원숭이)로 하는데 원숭이를 36마리 정도를 쓰면 10억이 든다. 저희는 원숭이 76마리로 늘려 ABL301에 대한 독성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그랩바디-B 플랫폼의 BBB 투과에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관련 데이터가 사노피와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결정타였다”

이 대표는 계약서에 최종 날인한 ‘그날’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는 “아직도 기분이 굉장히 좋고 자랑스럽다. 마치 아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며 “저희가 대한민국 바이오 업계에서 큰 일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K-바이오가 나아갈 길에서 교과서적인 사례를 만든 것 같아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은 굉장한 성과이지만 앞으로의 과제도 있다”며 “저희가 벤치를 달굴지, 주전으로 뛸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더욱 잘할지는 에이비엘바이오, 온전히 저희의 몫이다”고 덧붙였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글로벌 무대를 정복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은 현실로 다가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팜뉴스 취재진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에이비엘바이오와 이상훈 대표를 응원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근거 없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고 말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