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식약처발 ‘불순물 관리’에 대한 새로운 원칙이 등장했다. 해외에서 불순물 이슈가 터지면 식약처가 의약품 수거 검사를 진행하고 회수하는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다. 제약사들이 앞으로 스스로 시험법을 만들어 불순물을 솎아내고 그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식약처 입장이다. 불순물은 제약사 책임이란 명제에 기반한 지침이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이번 조치부터 방식을 바꿨다. 정부가 불순물 검사에 나서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많은 검사를 전부 할 수도 없다. 불순물에 대한 규명 책임을 회사에 전달한 이유다. 앞으로도 회사(제약사)는 스스로 시험법을 개발하고 성실하게 검사해서 결과를 제출하면 된다.”
9월 말 식약처 의약품관리과 관계자는 팜뉴스 측에 이같이 밝혔다. ‘방식을 바꿨다’는 말은 식약처가 이제는 불순물 수거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는 식약처가 최근 아지도(AZBT) 불순물 함유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약사들의 고혈압 치료제 품목을 회수한 점을 말한다.
식약처는 그동안 발사르탄 등 불순물 사태가 터질 때마다 의약품을 수거한 뒤 검사를 진행하고 ‘판매 중단’ 또는 ‘회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아지도 불순물 사태는 달랐다. 식약처들은 제약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스스로 검사하라’고 했다. 불순물 결과 보고서 기한도 6월 22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정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새로운 지침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촉박했고 캐나다에서 촉발된 불순물을 스스로 검사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장비가 절실했다. 더구나 시험법도 필요했지만 식약처는 8월 2일까지 시험법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약 40일이 지나도 시험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팜뉴스 취재진이 의약품관리과에 “제약사들이 검사를 진행한다면 적어도 시험법은 먼저 마련해야 자체 검사를 진행 할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 까닭이다.
식약처는 새롭게 바뀐 입장을 고수했다. 식약처 의약품관리과 관계자는 “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회사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회사의 의무”라며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업체가 먼저 개발하는 것이 맞다. 시험법을 개발할 능력이 없는 회사는 지극히 소규모 회사다. 해외에서도 제약사가 불순물 검사를 선행하고 보건당국에 보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식약처 입장에 대한 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시험법 개발에 대한 부담까지 떠안아야 할 상황”이라며 “시험법 관련해서는 식약처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식약처가 이번에 아지도 불순물을 스스로 검증해서 캐나다 의약품에 제출한 제약사 명단을 봤으면 좋겠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장비를 갖춘 것은 물론 시험법 자체 개발 역량이 충분하지만 우리 제약사들은 전혀 아니다”며 “시험법을 먼저 공개하고 자체 검사를 진행하기도 버거운 제약사들이 대다수다. 식약처가 국내 제약사의 역량과 품질 관리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5월 30일 캐나다 연방보건부에 아지도 불순물(AZBT)을 검출한 테바, 산도즈 등 9개 제약사 규모는 글로벌 수준이다. 테바, 산도즈, 사노피는 글로벌 빅파마다. 파마사이언스는 캐나다 제네릭 업체 중 규모 4위를 자랑하고 선제약도 인도 최대의 제약사이자 세계 4번째 제네릭 업체다.
최초로 아지도 불순물 시험법을 자체 개발하고 스스로 검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회사들이 대부분 세계적인 제약사였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불순물 사태가 터질 경우 식약처는 불순물 관련 공식 시험법, 즉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가 만들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 만드는 것을 우리가 또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앞으로 의약품에 불순물 이슈가 재차 발생할 경우 제약사 스스로 시험법을 개발하고 자체적으로 불순물을 검증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하 평가원) 측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평가원 관계자(불순물 시험법 개발 담당)는 “캐나다발 해외 안전성 정보를 입수한 이후 시험법 개발에 착수했다”며 “시험법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 공개한 것이고 공식 시험법은 아니다. 공식적인 가이드라인 이름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제약사들이 품질 관리를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참고용으로 공개된 것”이라며 “시험법에 타당성 입증만 이뤄진다면 꼭 저희 것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제약사 스스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업계 관계자는 “시험법도 시간도 주지 않고 당장 새로운 원칙을 따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식약처가 진정 제약사를 위했다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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