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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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최선재 기자] 대학병원에 다녀온 뒤 고민에 빠졌다. 80만원짜리 MRI 예약을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큰 병원 의사까지 만난 마당에 MRI 정밀 검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불친절하고 건방진 태도를 지닌 교수에게 소중한 어깨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의 고민을 접한 지인 소개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같은 의사이기 때문에 정밀 검진을 할지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 좁은 대기실에 많은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를 고치려면 골반을 교정해야 합니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가 내게 건넨 첫 마디다. 그는 경추 MRI 검진 사진과 어깨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경추에는 문제가 없고 어깨 MRI를 찍어도 통증을 고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요”라며 “만성 통증은 신체 불균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골반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입니다”고 말했다. 

의사 지시에 따라 진료실 안쪽에 놓인 긴 의자에 누웠다. 골반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허벅지, 사타구니, 허리, 목, 어깨 주변에 프롤로 주사를 약 30번 정도 맞았다. 주사를 전부 맞고 똑바로 서면 어깨의 기울기를 측정했다. 

도수 치료와 주사 그리고 어깨 기울기 측정을 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반복했다. 물리치료실에서 감압치료와 자기장 치료를 골반과 허리에 받은 이후 약 처방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 치료법이라서 반신반의했지만 그날 밤부터 어깨 통증은 놀라울 만큼 좋아졌다. 

최대 통증 수치를 ‘10점’이라고 보면, 6점인 통증은 2~3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어깨가 좋아지니 일상이 회복됐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에 가서 같은 치료를 받았다. 통증은 0~1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긋지긋한 어깨 통증에서 벗어난 것이다. 

4곳의 병원에서 4명의 의사를 만나 120만원의 치료비를 썼지만 낫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 한 번으로 어깨 통증이 사라졌다. 분노와 통증으로 보낸 두 달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획 기사로 연재해야겠다고 결심한 배경이다. 

치료 과정에서 대다수 의사들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병원을 옮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오십견 진단을 내린 의사는 30대 젊은 청년이 왜 ‘유착성 관절낭염(오십견)’이 올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처방한 약의 효과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두 번째 의사는 자신의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은데도 끝까지 처방을 고수했다. 그는 진료 현장에서 나온 환자의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내색을 보였다. 프롤로 주사와 체외 충격파 치료가 10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드는데도 치료 효과 대비 기대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당장 프롤로 치료가 통증이 일어날 수 있지만 시간이 가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대학병원 의사는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는커녕 어깨 초음파 검사 사진조차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급한 표정으로 나의 질문을 막고 검사 종류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주사에 들어간 약물이 리도카인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여기서 핵심은 설명 없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내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흰 가운과 백색의 진료실에 들어선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해도 그대로 병원문을 나오고 습관처럼 생각했다. “의사가 별로네 다른 병원을 가야지”.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의사’ 또는 ‘괜찮은 의사’를 만날 때까지 병원을 전전한다. 그럴 때마다 낙담을 거듭하고 돈은 돈대로 쓰는데도 다른 병원을 찾는다. 설명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서비스를 받았는데 의사의 치료행위를 문제 삼지 않고 의료 쇼핑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상식적인 행동과도 거리가 멀다. 맛집에 갔는데 형편없는 반찬이 나오거나 도가 지나친 점원이 있다면 따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담이 정확하다, 요금이 저렴하다, 서비스가 친절하다’가 우리 동네 핸드폰 가게 구호다. 동네 핸드폰 가게가 이럴진대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상담이 정확하지 않았고 요금이 싸지도 않았고 서비스도 저렴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흰 가운 앞에서 작아진다. 병원에 가서 의사가 1분 진료를 하고 석연치 않은 설명을 해도 우리는 흰가운 앞에서 작아진다. 몇 달을 기다려 대학병원 찾아가서 질문 한번 못해본 채로 면박을 당하는데도 다른 대학 병원 명의를 검색해서 예약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우리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다. 의료소비자로서 정당하게 진료비를 냈는데도 치료 효과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A/S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맞다. 병이 낫지 않는다면 환불을 해달라고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면서 기자인 나조차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를 곱씹어봤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결정적이었다. 병원을 방문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서비스를 받아도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따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 경험을 ‘공적인’ 목소리로 응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어깨 통증을 치료하면서 난생처음 진단서, 진료의뢰서, 세부내역서, 영수증을 책상에 쌓아놓고 치료명과 약물을 분석하고 따져보았던 이유다. 독자들에 묻고 싶었다.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느냐”고 말이다. 

희망적인 사실은 “최기자의 어깨 통증 후일담”을 연재를 하는 과정에서 공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의사를 만나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쇼핑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한 독자들도 있었다. 

단순히 공감을 넘어서 자신이 겪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낱낱이 제보해줬으면 좋겠다(remember2413@pharmnews.com).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팜뉴스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메시지다. 

극단적인 형태의 의료사고에 시선을 쏟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의료 소비자로서 겪은 부당한 경험들을 모아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다. 독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우리는 환자 이전에 의료 소비자다. 의사와 병원에 합리적인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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