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열패감’의 사전적 정의는 “남보다 못하여 경쟁에서 졌다는 느낌”이다. 국내 전통 제약사들의 R&D 투자액 공개가 이어질 때마다 주요 언론은 ‘열패감’을 자극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들의 R&D 투자액을 비교해왔다. 

스위스의 로슈와 화이자는 한해 기준, 10조를 R&D에 쓰는데 “우리는 언제 신약 강국이 되느냐”는 내용이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나라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일종의 ‘열패감’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국내 전통 제약사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이란 실질 지표를 토대로 살펴보면, 전통 제약사들이 ‘열패감’의 늪에 허우적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시 자료를 토대로, 팜뉴스가 그 이유를 전격 공개한다. 

최근 5년간 주요 제약사 9곳의‘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 자체 분석 결과, 한미약품이 1위를 차지했다. 한미약품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은 2016년 18.4%에서 지난해 21%를 기록했다. 연구개발 투자액 자체도 1625억에서 2097억으로 뛰어 올랐다. 

그런데 2019년 기준 화이자는 매출의 19%를 R&D에 투자했다. 벌어들인 만큼 투자한다는 측면에서 한미약품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액은 화이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더구나 한미약품의 시작은 1967년, 화이자는 1849년이다. 17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서구권의 글로벌 빅파마와 한미약품의 R&D 투자액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다. 

대웅제약도 다르지 않다. 국민 대다수는 대웅제약을 ‘우루사’로 기억하지만 대웅제약은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 ‘펙수프라잔’을 필두로 신약 파이프라인 면면이 탄탄하다. 이는 대웅제약이 최근 5년간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액을 점진적으로 늘려온 결과다. 

대웅제약은 2016년 13.2%에서 2020년 15.3%로 R&D 투자 비율이 늘었다. 2018년까지 13%대를 유지하다가 2019년 15%에 도달했다. 제약사 9곳 중 투자 비율 순위도 꾸준히 3위권 내에 들었다. 한미약품에 밀린 ‘만년 2위’ R&D 제약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심지어 대웅제약은 최근 자사주 30만6513주 처분으로 실탄을 확보했다. 약 400억의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호이스타정 △니클로사마이드 주사제 등 약 20여개 신약 후보 물질에 R&D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비록 R&D 투자 비율이 글로벌 수준인 20%에 미치지 못했지만 향후 5년 내로 20%에 도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웅제약과 마찬가지로 일동제약의 간판은 활성비타민제 ‘아로나민’이다. 국민 대다수가 일동제약을 상대로 ‘신약’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열패감’이란 시각에서 바라보면 일동제약의 신약 개발 의지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일동제약의 최근 5년간 R&D 투자비율은 놀라운 수준이다. R&D 투자비율이 2016년 10.5%에서 2020년 14%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동제약의 지난해 매출 규모가 5600억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주목할 만한 수치다. 
 
한미약품과 대웅제약이 기록한 매출의 절반 수준인데도 R&D 투자비율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측면에서 신약 개발 의지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동제약은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비(非)알코올성 지방간(NASH) 등 간 질환 치료제 등 10여 종류의 신약 파이프라인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희귀 난치성 질환 분야의 바이오 벤처기업인 아보메드에 6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일동제약의 R&D 투자비율 순위도 2016년 6위에서 지난해 3위로 급상승했다. 유한양행, 녹십자, 종근당 등 1조 클럽 제약사들을 제치고 TOP3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일반약 중심의 매출 구조가 향후 전문약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제약사가 바로 일동제약인 이유다. 

물론 한미약품, 대웅제약, 일동제약 외에 다른 전통 제약사들의 최근 5년간 R&D 투자비율은 10% 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이 앞으로 글로벌 빅파마 수준의 R&D 투자비율에 도달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해야 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에 만연한 ‘R&D 투자액’ 단순 비교 분석은 잘못된 관행이다. 그런 관행을 고쳐야 제약업계 R&D 투자의 또 다른 ‘블루칩’이 등장해 업계에 신선한 활력을 선사할 수 있다. 숨은 진실을 가린 분석 방법에 취해 열패감을 느낄 시간에 팩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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