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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태움’은 ‘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기자수첩] ‘태움’은 ‘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 신용수 기자
  • credit@pharmnews.com
  • 승인 2021.03.1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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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병원 태움 사건’ 기사에 ‘태움 문화’ 표현 관련 비판 댓글 달려
팜뉴스 편집부, 독자 의견 따라 태움 문화→태움 악습으로 수정 결정
[사진=학술정책팀 신용수 기자]
[사진=학술정책팀 신용수 기자]

 

[팜뉴스=신용수 기자] “태움 문화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정신이 멍해졌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댓글이었던 까닭이다.

기자는 지난 주 두 차례에 걸쳐 ‘충북대 간호사 태움 사건’에 대해 단독 보도했다. 10일에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최초 제보자를 만나 2012년 있었던 ‘가래통 투척’ 사건의 전말을 알렸고, 12일에는 추가 제보를 통해 확보한 2012~2013년 당시 충북대 중환자실 내 태움 악습에 대한 구체적 정황을 전했다. ([단독] 간호사 태움… 충북대병원 ‘가래통 투척’ 사건 ‘제보자’ 만났다, [단독] “9년 전 충북대병원 간호부, ‘태움’ 가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보도의 파장은 적지 않았다. 팜뉴스 보도 이후 JTBC‧MBC 등을 비롯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최초 제보자의 목소리를 취재해 전했고, 태움에 대한 공론화가 다시 한번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태움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故 서지윤 간호사 2주기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까닭에 그 분노는 더욱 컸다. 가해자로 지목된 B 간호사의 교수 임용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은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12884명(15일 오후 5시 30분 기준)을 기록했다. 

두 기사 중 문제가 된 건 첫 번째 기사 속 ‘태움 문화’라는 표현이었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간호계에 여전히 만연한 태움 문화을 근절하는 것’ ‘간호계 태움 문화뿐만 아니라’ 등 총 두 번의 ‘태움 문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가현’이라는 닉네임의 독자는 댓글을 통해 “(태움은) 아름다워 계승해야 할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태움 문화라는 것은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과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왕따나 학폭(학교 폭력)을 문화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제발 태움 문화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항의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지적받은 탓이다. 태움 문화라는 표현은 사실 수많은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기사를 쓸 때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거리낌도 없이 써 내려간 표현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틀린 대목인 까닭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화(文化)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뜻한다. 

태움은 공동체 이익에 반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행동 양식으로, 문화라 부를 수 없는 행위가 맞다. 심지어 행동 양식으로 이뤄낼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 소득도 없다. 태움에게는 결코 문화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기자는 곧 죄책감이 들었다. 댓글 말대로, 태움을 문화로 표현하는 행위는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에 따른 것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계승해야 할 것은 더욱 아니다. 왕따나 학교 폭력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싹을 잘라내야 하는 악습이다. 악습을 악습이라 하지 않고, 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피해자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말이다. 피해자의 관점이 철저히 소외됐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기자뿐만 아니라 편집부 모두에게도 경종을 울렸다. 긴급히 소집한 편집 회의에서는 “댓글의 지적이 옳다” “당장 수정 조치해야 한다” 등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편집부는 기사 속 ‘태움 문화’를 ‘태움 악습’으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편집부는 또 기사를 통해 수정 사실에 대해 제대로 공지하기로 했다. 사실 오타 수정하듯 그냥 문화라는 단어를 악습으로 슬쩍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의 의견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자세라 볼 수 없다. 수정에 대한 솔직한 공지는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언론으로서 품격을 잃지 않는 팜뉴스가 되겠다는 각오였다. 

이제 태움의 가해자로 지목된 간호사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제보자들의 말대로 태움 행위를 저질렀다면, 우리처럼 용기 있게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란다. 태움 행위가 없었고 진정 떳떳하다면, 당당히 나서 반박하고 반론해야 할 것이다.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면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사과든 반박이든,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길 바란다. 그것이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세다. 팜뉴스는 언제나 상대측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을 준비가 돼 있다. 

* 팜뉴스는 현재 충북대병원 태움 사건 관련 피해자의 추가 제보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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