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6부 장면 캡처

[팜뉴스=최선재 기자] 심수련(이지아)은 정말 부활한 것이 맞을까. 나애교(이지아)가 심수련으로 위장한 것은 아닐까. 자식인지도 몰랐던 민설아(조수민)을 잃은 심수련이 그토록 불쌍하게 살해당했다면, 살아 돌아와 주단태(엄기준)에게 복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은별(최예빈)의 트로피에 찔려 죽은 배로나(김현수)는 정말 죽은 걸까. 로건리(박은석) 칼에 맞은 오윤희(유진)도 살았는데 하물며 심수련과 배로나도 나중에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이 맞지 않을까. 

방금 이 글을 읽은 시청자들은 기자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덕후’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펜트하우스’ 광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볼 법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펜트하우스는 시즌2에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기자도 매주 주말을 기다릴 정도로 펜트하우스의 열성 팬이다. ‘제발! 이번 회에서는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주단태(엄기준)와 천서진(김소연)을 통쾌하게 무찔렀으면’이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와 기막힌 반전 덕분에 드라마를 ‘너무너무’ 재밌게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일 방송된 6부에서는 다소 불편한 장면들이 보였다. 천서진은 극 중반부에 딸인 하은별을 재우기 위해 서랍통에서 약통 하나를 꺼낸다. 약통 표면에는 “수면 유도제, 스티녹스정”이라고 쓰여 있다.

천서진은 그 알약을 가루약으로 만들어 딸 몰래 주스에 타서 먹인다. “명심해, 아무생각하지 말고 푹자, 자고 나면 다 지나갈 거야”라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자신의 라이벌인 배로나를 죽인 딸이 경찰 조사를 피하도록 하기 위한 꼼수다. 

약의 이름은 ‘스티녹스’가 아니다. 정확히는, 프랑스의 사노피사가 생산 중인 수면유도제인 ‘스틸녹스’다. 드라마의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비슷한 약품 문구로 김순옥 작가가 마련한 일종의 ‘디테일’이다.

그러나 스틸녹스의 주성분은 졸피뎀이다. 스틸녹스는 향정신성의약품 중에 가장 유명한 약이다. 효능효과는 ‘잠들기 어렵거나 숙면유지가 어려운 성인에서의 불면증의 단기 치료’이지만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골칫거리 약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스틸녹스 불법 과다 처방과 오남용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약 2년 전, 간호조무사들이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도용해서 스틸녹스 약 1만 7천여정을 처방받은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청주의 한 종합병원 의사가 환자에게 스틸록스를 불법 처방해서 재판에 넘겨졌다. 방송인 에이미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됐을 당시 복용한 약도 스틸녹스다. 심지어 ‘전남편 살인사건’의 고유정은 스틸녹스가 섞어 넣은 카레를 먹인 이후 전 남편을 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아무리 19금 드라마지만 굳이 스틸녹스와 유사한 ‘스티록스’를 지상파 방송에서 버젓이 시청자들에게 노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6부 장면에서 그런 의문이 들었던 이유다. 기자가 제약 업계를 주로 취재해왔기 때문에 의약품 이름에 유독 눈길이 간 것은 사실이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광고는 법적으로 금지됐는데도 오히려 방송사가 나서서 향정의약품을 선전해주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틸녹스의 포장 단위는 28정인데 드라마에서는 버젓이 ‘100정’으로 나온다. 과다 복용을 조장할 수 있는 장면이다. 애당초 살인을 저지른 딸을 재우기 위해, 몰래 가루약을 섞는 ‘범죄장면’에서 스틸녹스가 사용됐다는 점도 문제다. 

‘프로불편러’라고 욕해도 좋다. 하지만 스틸녹스는 6부 방송 이후 ‘천서진 수면제’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그 약이 단번에 졸피뎀 성분의 향정신성 의약품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호기심으로 불면증을 호소해 신경정신과를 찾은 이후, 오남용이나 과다 복용의 늪에 빠져 환각증상을 겪는다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천서진 수면제’ 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5부 중반에서는 하은별은 청아 예술제를 앞두고, 진분홍(안연홍)을 향해 “도저히 안 되겠어요, 떨리는 것만 잡으면 되어요”라고 말하자, 진분홍은 “꼭 한 알만 먹어 심장약이라 흥분을 가라앉히는 정도면 충분해”라며 약통을 건넨다.

이번에도 카메라는 약통 표면에 쓰인 문구 ‘정신 신경안정제, 알프라나스 정, 100정’을 클로즈업했다. 하은별이 청아예술제 대기실에서 약을 복용하는 장면이 이어서 등장한다. 방송 이후 포털 사이트에는 “심장에 좋다는 하은별 약, 실제로 어떤 제품인가요” 게시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알프라나스’가 아니다. 실제는 한국파마의 ‘알프라낙스’다. 알프라졸람 성분의 신경안정제다. 이번에도 김순옥작가와 제작진이 글자를 하나를 바꿔 알프라낙스를 연상케 만든 것.

그러나 효능효과는 ‘불안장애의 치료 및 불안증상의 단기완화’ 등이다.  오히려 약학정보원은 알프라졸람 성분의 주의사항으로 ”혈압저하로 심장의 장애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심장애 환자에게는 신중히 투여한다”고 명시했다. 진분홍의 말처럼, 심장약이 아니란 얘기다.

알프라낙스의 주성분인 알프라졸람도 졸피뎀과 같이 약물의존성과 오남용 위험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식약처는 최근 알프라졸람 성분의 오용 문제를 방지 하기 위해 “최저 유효량으로 최단기간 투여해야 한다”는 문구도 추가했다. 드라마 속에서 하은별은 약을 복용한 이후 환각증상을 겪어 배로나를 살해하는데, 이 또한 알프라졸람의 이상반응이다. 

드라마는 판타지이자, ‘디테일’의 미학이다. 살아있는 ‘디테일’이 모이면 판타지는 극에 달한다. 펜트하우스가 창조한 기막힌 판타지를 향해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디테일이 사실과 다른 것은 물론 오남용 등 범죄를 조장한다면. 그 판타지는 시청자의 참혹한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김순옥 작가와 제작진이 앞으로 펜트하우스 드라마 제작을 이어갈 때, 이점을 명심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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