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하는 삼아제약 스테로이드 연고제 '리도멕스(프레드니솔론발레로아세테이트 0.3%)'가 제약업계 역사에 새로운 한 줄을 썼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법원까지 가는 행정소송 끝에 의약품 재분류 전환을 이뤄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식약처가 한 번 결정한 행정처분은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개 제약사가 식약처와 정면으로 맞붙어 자사 제품의 의약품 재분류 전환을 주도적으로 이끈 선례를 남기며 그 의미를 남겼다.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인 식약처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얼마나 힘든 현실인지를 여실히 보였다는 평가가 따른다.

2일 삼아제약은 피부질환치료제 리도멕스가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최종 전환됐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리도멕스0.3%는 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약국에서는 저함량 제품인 리도멕스0.15%가 출시돼 약사 복약지도를 받은 뒤 구입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제약업계 족적 남긴 '일반약 → 전문약' 분류 전환

리도멕스 재분류  전환이 결정되기 전까지 식약처가 거부한 행정처분 결정에 제약사가 소송을 제기, 승소한 사례는 전무했다. 더욱이 이번 경우는 임상시험 등을 진행하며 제기한 행정소송이 아니었다. 일반약을 전문약으로 바꿔달라며 제기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업계 이목이 쏠렸다.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반약을 전문약으로 재분류해달라는 신청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더욱이 식약처가 재분류 신청을 거부하자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는 행정소송 끝에 첫 분류조정 신청을 받아냈다.

결국 앞서 식약처에 의약품 재분류 전환 신청을 거절당한 제약사들이 행정소송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 것으로 업계 전체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다.

제약업계 한 법조인은 "그동안 식약처가 한 번 정한 결정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바꾸지 못 했다. 항상 식약처가 하라는대로 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제약사가 필요한 경우 의약품 재분류 전환이 가능해졌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리도멕스는 왜 가시밭길인 '재분류'를 고집했나

삼아가 리도멕스 전문약 분류 전환을 원한 배경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먼저 리도멕스가 유·소아의 각종 피부 질환에 오랜 기간 처방돼 안전하지만 실제 역가에 맞도록 전문약으로 재분류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원개발사인 일본 코와(Kowa)사 요청이 작용했다. 2016년 10월 코와사가 일본에서는 전문약으로 분류된다며 삼아에 전환을 요청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 몇년 간 스테로이드 외용제 시장이 전문약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배경이다. 식약처가 실시한 스테로이드 외용제 부작용 조사·연구에 따르면 2015년 6월까지 생산·공급 기록이 있는 스테로이드 외용제 중 피부용제는 745품목 중 일반약(303품목, 40.7%) 대비 전문약(442품목, 59.3%)이 많았다. 리도멕스는 일반약임에도 처방약 매출 비중이 90%에 달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리도멕스 등급을 명확히 구분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의약품 분류 기준 규정(제2조분류의기준)에 스테로이드 외용제를 전문약(1~6등급)과 일반약(7등급)으로 구분해 허가하고 있다. 구분 기준은 함량과 성분, 역가(Potency)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은 달랐다. 대한소아과학회 스테로이드 등급 가이드라인은 1·2등급, 3·4등급, 5·6등급, 7등급 등 총 4개로 구분하면서도 리도멕스를 '5·6등급(약한 강도)'의 전문약으로 구분하고 있다.

삼아가 대한소아과학회 가이드라인과 일본 등 국제 기준을 들어 리도멕스(당시 7등급 일반약)가 전문약(5·6등급)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던 이유다. 식약처가 만든 의약품 분류 기준에 맞춰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로는 분류 전환할 근거가 없다"며 분류 조정 신청을 거부했다. 식약처가 발주한 연구용역(스테로이드 외용제 부작용 조사·연구)가 근거였다. 당시 연구 보고서는 성분과 함량, 제형에 따라 역가를 4단계(Ultra high, High, Moderate, Low)로 분류하고 리도멕스 성분 프레드니솔론발레로아세테이트 크림과 로션, 연고 제형을 Low(6·7등급)에 포함했다.

결국 삼아와 식약처가 의약품 분류를 정하는 '역가' 등급 기준을 놓고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며 1년 9개월여의 긴 행정소송에 들어가게 됐다.

◆소송 쟁점이 된 '역가'...제약사-식약처 자존심 싸움

역가는 일반약을 전문약으로 전환 분류하기 위한 행정소송의 핵심이었다. 1·2심 모두 법원은 '역가(potency)' 기준에 어떤 근거가 있느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 법을 만든 식약처는 규제기관 기준이 맞다고 했지만, 삼아는 전문가 등 학회 가이드라인이 옳다고 주장했다.

역가는 쉽게 말해 의약품 효능·효과 강도를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 스테로이드 외용제를 피부에 발랐을 때 혈관 확장 정도를 측정한다.  리도멕스와 같은 국소 스테로이드제는 혈관수축과 항염증, 면역억제, 증식억제 작용을 한다. 혈관수축 능력에 따라 역가를 7등급으로 구분한다. 문제는 스테로이드 제제가 빠른 내성으로 혈관수축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오·남용 시 모세혈관이 잘 수축되지 않아 더 많은 용량이 필요하다. 식약처가 '강도'에 따라 일반약과 전문약을 구분하는 이유다. 

1심에서 삼아는 리도멕스가 5~6등급의 전문약이 맞다고 계속 주장했다. 대한소아과학회는 스테로이드 등급을 1·2등급, 3·4등급, 5·6등급, 7등급 등 총 4개로 나누고 리도멕스를 '5·6등급(약한 강도)' 전문약으로 구분한다. 리도멕스 오리지널인 일본 코와(Kowa)사 제품은 현지에서 전문약으로 분류한다고 내세운 것이다.

이에 반해 식약처는 서울대 산학협력단 연구에서 리도멕스 역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며, 일본 등 역가 관련 자료는 신빙성이 떨어져 리도멕스 역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주장했다. 아울러 의약품 분류 결정은 역가 뿐 아니라 안전성과 유효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현 의약품 분류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협회 등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가 대립된 의약분업을 통해 이뤄진 '사회적 합의의 산물'인 만큼 분류 조정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1심)은 행정청이 아닌 기업의 손을 들었다. 식약처가 리도멕스 전환 분류를 거부한 역가등급 인정에 오류가 있어 거부 처분이 위법하다고 봤다. 식약처가 역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리도멕스 역가를 6등급 이상으로 볼 수 있는 의학적 자료가 존재한다. 7등급으로 구분하는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는 리도멕스 크림을 5등급, 로션은 6등급으로 분류한다. 총 5등급으로 나누는 일본의약협회는 3등급, 일본후생성·일본알레르기학회는 5등급 중 4등급으로 본다"며 역가 등급을 세분화된 7등급으로 분류해도 6등급 이상 전문약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아울러 의약분업을 통한 사회적 합의 산물이라는 식약처 주장에는 "이해관계자들 간 사회적 합의는 의약품 분류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약물 오·남용 방지 등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공익적 목적보다 중요해선 안 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에 불복한 식약처가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마찬가지 결론이 났다. 식약처가 제약사에게 두 번 모두 진 것이다. 결국 식약처가 항고해 대법원까지 갔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났다. 의약품 분류조정 신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삼아가 이긴 것이다. 

◆1·2심도 모두 진 식약처,  행정소송 후 '절차' 다시 시작?

이번 행정소송은 권력기관인 식약처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였다. 삼아가 리도멕스 전문약 재분류 전환을 신청한 것은 2018년 3월이지만 최종적으로 전환이 이뤄진 것은 분류조정 신청으로부터 3년, 행정소송은 약 1년 9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한 소송이 끝나도 행정절차가 남아있었다. 

삼아는 2019년 5월 10일 분류 조정 신청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서울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해 같은 해 6월 28일  "지난해 3월 원고에 대한 각 의약품 분류 조정 신청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 15일 식약처가 항소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1심에서 삼아가 승리했지만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이 점쳐졌다. 뒤이어 2심에서도 식약처가 지며 사실상 규제기관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가 됐다. 

2020년 2월 12일 업계에 식약처가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식약처 관계자는 "일본에서 (리도멕스는)의료용으로 분류했지만 꼭 처방전이 있어야 판매하는 약은 아니다. 법원이 감안해주지 않은 부분을 종합적으로 판단, 다시 따져보려 한다"며 상고 이유를 전했다. 쉽게 끝내지 않겠단 의지였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28일 대법원은 삼아의 손을 들었다. 다만, 최종 승소 결정이 나왔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식약처가 리도멕스를 전문약으로 변경하기 위해선 허가 검토 절차가 필요했다. 아울러 동일 성분 품목도 분류 조정을 해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이 분류조정 신청 절차는 쉽지 않았다. 식약처는 분류 조정 문제를 차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약사법, 리도멕스 등 동일 성분 통일 조정 등 사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행정소송을 이겼지만 또 다른 관문이 남아있던 셈이다.

당시 업계에는 식약처가 약사법과 의약품 분류 규정에 따라 리도멕스 안전성과 유효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 검토, 분류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 전해졌다. 일반약으로 허가한 의약품인 만큼 전문약 수준에서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식약처는 전문약 변경이 가능한지 세밀히 들여다봤다. 이에 따른 자료 요청도 꼼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검토 수준이 "사실상 재허가나 마찬가지 수준"이라는 소리가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들렸다. 같은 해 7월 식약처는 전문약 재분류 절차를 진행 중임을 확인해줬다. 삼아에 전문약 요건을 갖춘 분류 조정 신청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8개월이 지난 올해 3월 2일 전문약으로 최종 전환을 이뤄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