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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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비상시 코로나19 백신을 폭탄주처럼 섞어 쓰겠다고 선언해 논란이다. 코로나19 백신은 보통 1‧2차에 나눠 접종하는데, 대유행 상황에서 1차 접종한 백신과 같은 제품을 구하지 못할 경우 2차 접종에서 다른 회사의 백신 접종을 허가하겠다는 것. 국내 전문가들은 영국의 방침에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인체에서 증명된 바가 없는 만큼 과학적 근거를 더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 잉글랜드 공중보건국(PHE)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지침에 따르면, 2차 접종 시기에 1차 접종 백신을 얻을 수 없거나 1차 때 투여한 백신 제조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현재 화이자 백신과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승인했는데, 두 백신 모두 효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3~4주 뒤 2차 접종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차 접종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뒤 2차 접종 시기에 주변에서 화이자 백신의 재고가 없어 구할 수 없다면 동일 백신 수급을 기다리기 보다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라도 빠르게 접종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영국 보건당국은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비상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궁여지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PHE 관계자는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코로나19 백신들 간 상호교환성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백신 전문가는 영국의 선택에도 나름 합리적인 요소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영국에서 승인된 두 백신은 모두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단백질에 대한 유전정보를 전달해 체내에서 항원 생성 및 항체 형성을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 백신의 차이는 유전정보를 운반하는 운반 방식에서 갈린다. 화이자 백신은 지질로 둘러싼 mRNA로 정보를 전달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벡터)로 이용한다.

백신도입 TF(태스크포스) 위원인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서로 다른 플랫폼의 백신을 섞어 쓰는 것이 효율이 오히려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런 현상을 ‘헤테로로고스 프라임 부스트’(heterologous prime boost)이라고 하는데, 1차 접종과 2차 접종에서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면 백신 간 간섭 효과를 피할 수 있어 항체 유도 효과가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 교수는 아직 이 현상이 ‘사람’에게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헤테로로고스 프라임 부스트 현상은 동물실험으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나 또한 관련 논문을 작성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려면 원칙적으로는 새로운 임상시험을 통해 따로 인허가를 받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단일 감염병에 대해 이처럼 여러 플랫폼의 백신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독감의 경우에도 여러 회사의 백신이 있지만 플랫폼은 항원을 무력화시킨 불활화 백신으로 같다”며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긴급하다보니 이 같은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백신 혼용을 할 것인지 여부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국내 임상 전문가는 우선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임상 전문의는 “사실 중화항체 생성 능력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있다면 이를 토대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아직 임상도 완료되지 않았을 뿐더러 화이자 백신도 현재 관련 논문이 공개적으로 발표된 바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백신 보급을 위해 유연하게 접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유연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PHE는 나름 합리성을 갖춘 기관인데 어떤 근거로 방침을 결정했는지 밝히지 않았다”며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의 백신이 유도하는 항원 단백질의 성질을 서로 비교한 결과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두 항원이 유사하다면 비슷한 항체를 유도해 항체 생성을 증폭할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라도 확보한 뒤 혼합 접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의 백신 혼합 접종 방침은 영국 특유의 경직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빚어진 촌극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앞서의 전문의는 “영국의 경우 의료 시스템이 우리나라처럼 지역 병원이 발달해있지 않고, 대부분 공공의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백신을 갖고 있는 기관이 한정적이라는 뜻”이라며 “게다가 영국은 현재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갑자기 환자가 쏠리면 백신 수급이 지역 병원에 따라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이 같은 방침을 마련한 것인데, 나름 선진국 반열에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국격에는 어울리지 않는 미봉책이기는 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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