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말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인의 일상은 무너졌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백신 개발이었다. 올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백신 개발에 뛰어든 글로벌 빅파마를 향해 집중됐던 까닭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지난 4월부터 초고속으로 임상 승인을 얻어 각축전을 벌였다.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1상, 2상을 거쳐 3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지구촌은 환호했다. 연말이 도래한 지금, 글로벌 제약사들의 열띤 레이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열전 삼국지’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약사가 백신 1차전 승자로 기억됐을까. 팜뉴스가 이들 제약사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여준 백신 개발과정을 중심으로 경자년을 돌아봤다.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는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된 중국의 역사 소설이다.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책으로 동양 최고의 고전이자 필독도서다.

≫ 화이자 ‘백신’ 패권 전쟁 1차전 승리, ‘위나라’ 연상

조조의 위나라는 후한이 멸망한 뒤 삼국을 지배했던 세 나라 중 가장 강대했던 나라였다. 천하의 60% 이상을 장악했고 나머지 40%를 오나라와 촉나라가 나눠 가질 정도로 위나라의 위세는 대단했다. 위나라의 군사는 촉과 오를 합친 것보다 몇 배 이상 많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2020년 데이터북’을 보면, 2020년 기준 매출액(처방의약품) 기준 세계 1위 제약사는 미국의 화이자다. 화이자의 2019년 매출액은 약 499조 4,545억이다. 화이자는 매년 약 50억달러(약 6조원)를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 중이다. 화이자의 막강한 자본력과 시장 점유율에서 삼국지의 ‘위나라’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이다.

화이자는 처음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BNT162)의 독일 임상 1/2상 시작일은 4월 22일이었다. 오히려 모더나는 5주 정도 앞선 3월 16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어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화이자가 모더나보다 백신 개발 속도가 늦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화이자는 막대한 자본력과 노하우를 지닌 기업이었다. 백신 개발 역사도 100년이 넘는 수준이다.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승인 소식이 연달아 들렸지만 화이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전세계의 식약처’ FDA가 있는 ‘중원’인 미국을 철저하게 공략했다.

화이자는 FDA에 임상 1,2,3상을 동시에 신청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화이자는 지난 9월부터 3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미국 임상 3상 시험에 전력 투구했다. 임상 시험 과정에서 엄청난 예산이 들었지만 미국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임상 참여자 모집에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화이자의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화이자는 미국 임상을 마무리한 이후 지난 11월경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90%를 상회하는 면역 효과를 보인다고 중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FDA는 최근 화이자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했고 영국 등 수많은 나라들이 화이자 백신을 공식 허가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벌써 약 40만명이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이는 마치 조조의 위나라가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100만 대군을 대파하고 화북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화북을 점령한 조조는 그 이후 통일 전쟁을 앞당겼다. FDA가 허락한 약이 ‘글로벌 스탠다드’ 자격을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이자의 파죽지세는 천하통일에 한발짝 다가선 위나라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 아스트라제네카 급부상 But 천하통일 목전 좌절 ‘촉나라’

삼국지연의는 기본적으로 유비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모든 에피소드는 유비와 촉나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비는 황실의 종친으로 무너진 한(漢) 황실을 잇고자 하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분명한 인물이었다. 그 덕에 촉나라를 세웠을 당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수많은 ‘셀럽’ 장수들이 유비를 찾았다.

이는 마치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과 닮아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AZD1222)은 지난 7월 영국에서 옥스퍼드대와 지원자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그 어떤 제약사보다 가장 빨리 시작했다. 아스트라제네카 최대 명분은 ‘세계 최초’로 ‘가장 빠르게’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었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컴퍼니(McKinsey&Company)는 8월 2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긴급 사용 승인일을 9월로 예상했다. WHO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후보물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에는 아스트라제네카만큼 ‘잘’나가는 빅파마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9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코로나19 백신 임상 3상 과정에서 참가자 중 한 명이 심각한 중증 이상 반응을 보인다는 이유로 임상시험이 잠정 중단된 것.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의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을 ‘스톱’시켰다. 임상 3상 시험은 재개됐지만 아스트라제네카의 내리막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 아스트라제네카의 중간 분석 발표 시점은 화이자와 모더나보다 늦었다.  영국과 브라질에서 진행된 3상 시험의 중간분석 결과에서는 투여요법이 다른 임상시험의 효과를 합산하는 황당한 방법으로 평균 70%의 면역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FDA는 결국 부작용 사례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면역효과 부풀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을 무기한 연기했다.

아스트라제네카를 삼국지의 촉나라로 비유하는 것은 무리일까. 촉나라도 마찬가지다. 촉나라는 유비가 사망한 이후 국운이 급격히 기울었다. 제갈량은 지속적으로 북벌을 감행했지만 수차례 실패했다. 강유도 북벌을 단행하지만 실패하고,

방탕해진 유선은 결국 위나라에 항복하고 촉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위촉오 중에 가장 먼저 무너진 나라가 촉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도 지난 여름 한껏 높이 올라갔다가 겨울에 완전히 고꾸라진 경자년을 보냈다. 2021년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이 향후 어떤 결과를 맞을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이유다.

≫ mRNA 외길 ‘스타트업’ 기적 모더나, 강동의 패왕 ‘오나라’

손권이 세운 오나라는 촉나라와 위나라에 비해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끈질긴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쌓으면서 ‘수성의 이미지’를 굳혔다. 오나라는 위나라의 군사력과 촉나라에 있는 멋진 장수도 없지만 특유의 수군 전력으로 내실을 탄탄히 해서 강동의 패왕으로 군림했다. 촉한이 망했을 때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정도였다. 

모더나에서 ‘오나라’란 키워드가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더나는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빅파마는 아닌 스타트업이다. 기업의 역사는 불과 10년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1913년, 화이자가 1849년에 설립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더나는 창업 초기부터 mRNA 치료제 개발에 매달렸다.

모더나가 스타트업 신분인데도 2015년 당시 자산가치가 30억 달러를 웃돌았던 배경이다. 2018년 12월 기업공개(IPO) 때 나스닥에서 6억2100만달러(한화 6,849억)를 끌어 모았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RNA 합성과 변형에 대한 노하우 경력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기업란 뜻이다. 결국 모더나는 mRNA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장 먼저 착수하면서 전세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심지어 모더나의 미국 임상 3상 시작은 아스트라제네카보다도 늦었다. 하지만 화이자에 이어 면역효과 94.5% 수준의 중간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모더나는 최근 임상 시험 최종분석을 통해 감염 예방 효과가 94.1%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결국 모더나는 글로벌 빅파마 들을 제치고 화이자에 이어 FDA의 긴급사용 승인을 얻어냈다.

삼국지연의는 한나라가 파국으로 치달은 이후, 황건적이 민심을 뒤흔들던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된 소설이다. 후한 말에 난세를 거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떼로 죽어 나가는 격동의 시대를 담았다. 나관중이 각 지방에서 난세의 영웅들을 흥미롭게 조명한 이유다.

코로나19 시대도 다르지 않다. 때아닌 역병으로 도처에서 생명이 죽어 나가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12월경 화이자와 모더나가 난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물론 아스트라제네카가 다시 비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병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영웅은 2021년 과연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지구촌 70억 인구가 2021년을 간절히 고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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