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약·정책팀 최선재 기자
사진=제약·정책팀 최선재 기자

지난 6월, 약 1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 양가 허락을 얻은 이후, 바로 12월경으로 날을 잡았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약 50~60명이 나오던 시기였다. ‘대구 집단 감염 사건’ 이후 폭발적인 감염 추이가 진정됐기 때문에 ‘설마, 코로나19가 결혼식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이태원발 집단감염 사태가 터졌을 때도 결혼식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예식 날까지, 약 2달의 기간이 남아 있어 여유로웠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2.5단계로 격상하고 웨딩홀 입장 인원을 49명으로 제한할 때도 무심했다. 웨딩 커뮤니티의 눈물 섞인 글들이 올라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차근차근 결혼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혼식 약 2주 앞두고, 확진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결국 12월 6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1단계는 웨딩홀 입장 인원이 100명 이하였지만 2.5단계에서는 49명이었다. 어쩔 줄 몰라서 예식장에 연락을 취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구청에서 공문이 내려오지 않았다. 저희도 모른다”였다.

이틀 뒤 예식장에서 연락이 왔다. 예식장 측은 “결혼식당 49명 미만으로 제한, 단 로비 인사 후 축의금을 내고 답례품만 받고 귀가시, 49명 미만에서 제외된다”며 “보증 인원은 1안과 2안 중 선택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1안은 ‘보증 인원 30% 하향 조정 가능, 식사 인원은 98명 한상차림, 그 외 인원은 답례품 제공’, 2안은 ‘보증 인원 50%까지 하향, 식사 없이 보증 인원 전체 답례품 제공’이었다.

예식장의 설명이 처음에는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증 인원을 줄여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안을 따르면 코로나19 시대에 식사 제공을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2안대로 진행할 경우 잔치를 벌이는 날에 식사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안과 2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1안과 2안을 왜 선택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일었던 까닭이다.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예식장이 정한 대로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또는 “1안과 2안 말고 3안은 없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쾌한 기분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식장이 자신들이 유리하게 정해놓은 ‘답정너’의 대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안과 2안은 전부 부당한 방안이었다.

예식장 측은 1안을 선택하면 98인 식권 소지자들이 다른 2개의 공간에 49명씩 나눠서 실시간으로 결혼식을 시청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식권을 가진 사람이 웨딩홀 안의 49인 안에 포함되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 인원만큼 빠지는 구조였다. 웨딩홀에서 식권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다른 실시간 시청 공간의 인원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기적의 논리’를 동원한 이상한 공간 활용이었다.

2안도 다르지 않았다. 2안은 식사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방식이다. 앞서 1안처럼 식권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 웨딩홀 49명, 다른 두 공간에 각각 49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답례품은 예식장에서 제공한 대로 따라야 했다. 당장 예식장으로 연락을 취해서 ‘1안’과 ‘2안’ 그 어느 대안도 따를 수 없다고 항의했다. “더 나은 대안이 없느냐고”도 물었다.
 
하지만 예식장 측은 방역 지침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신랑님만 항의를 하신다. 신랑님에게만 맞춰줄수 없다”는 답변도 했다. 예식장 측은 식권 소지자가 웨딩홀 49인에 포함된 이후, 다른 공간에 생긴 빈자리를 식사를 하지 않는 인원이 채우도록, 1안을 다소 수정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우리는 결국 식사 제공을 포기하고 2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안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예식장 측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은근슬쩍 ‘답정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사실을 알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어차피 이곳에서 결혼을 할 것인데 예식장 측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작용했다.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바꿀 수 있는 선택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메이크업 업체도 다르지 않았다. 메이크업 업체 측은 예식 직전 “본식 스냅 작가는 메이크업 진행 과정에서 30분만 머물러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보통은 본식(결혼식) 스냅 작가는 예비 신랑 신부가 메이크업을 받는 과정을 1시간 30분 동안 촬영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30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명확한 기준도 없었다. 오로지 ‘코로나19 방역’이 명분이었다. 혹자는 ‘고작 1시간인데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스냅 촬영의 메이크업 현장 촬영 추가 비용은 수십만원 이상이다. 메이크업 업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신랑신부에게 금전적 손해를 고스란히 떠넘기려고 한 것이다. 

수차례 항의 끝에 ‘신랑님께만 특별히 1시간을 확보해 드리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하지만 메이크업 업체 관계자 4명과 5통의 전화, 약 30분 간의 통화 이후 얻어낸 결과였다. 심지어 업체는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는데 따졌으니,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는 뉘앙스의 말도 했다.

물론, 결혼식은 어떤 소란도 없이 무사히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웨딩홀 공간에 입장할 수 없었지만 라이브 방송(네이버 밴드) 통해 수십 명이 결혼식 장면을 지켜봤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인간적인 유대도 더욱 돈독해졌다.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은 날, 예식을 진행했는데도 수많은 이들이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비신랑과 신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웨딩 업체가 코로나19를 핑계로 ‘답정너’ 대안을 제시할 경우 끝까지 설명을 요청하기를 바란다. 특히 설명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에 끈질기게 항의해서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도 기가 막히는데 가만히 앉아서, 호구 취급을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를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유별난 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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