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긴급 사용 승인을 본격화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배경을 주목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화이자가 기저질환을 지닌 환자들을 임상 시험에 충분히 포함시킨 결정을 내린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FDA는 단순히 미국 식약처가 아니다. 2018년 기준 FDA 직원 숫자는 1만7468명이다. 우리 식약처 직원 수가 600명인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규모다. FDA와 우리 식약처 직원 수와의 차이는 29배에 달한다. FDA가 ‘세계의 식약처’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식약처’가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긴급사용 승인을 내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DA가 자문기구인 백신·생물의약품자문위원회(VRBPAC)에 제출한 임상시험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숨은일인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임상 전문가(전문의)는 “일반적인 백신 임상 시험은 기저 질환을 지닌 참여자들을 배제하고 진행한다”며 “일단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한 뒤 허가를 받고 실제 필드 현장 즉, 리얼 월드 데이터(RWD)에서 기저 질환자들에 대한 효과성을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화이자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따로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숫자의 만성질환자들을 참여시켜 3상 시험을 진행했다”며 “코로나19는 기저질환을 지닌 환자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런 환자들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실용적이고 좋은 임상 디자인을 진행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이 FDA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FDA는 백신·생물의약품자문위원회 회의에 앞서 발표한 브리핑 문서에 따르면, 임상시험 참가자는 총 35649명, 이중 합병증 없는 당뇨병 2940명(7.8%), 만성 폐질환 2920명(7.8%), 심근경색 381명(1.0%) 등 기저질환 환자들을 백신 투여군과 위약 투여군에 비교적 균형적으로 배치했다.

심지어 고혈압 환자의 비율은 9208명(24.5%)에 이를 정도다. 이들 환자를 포함한 데이터에서 백신은 평균 95%의 면역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 FDA의 결론이다. FDA가 보고서 말미에서 “효과가 당뇨병, 고혈압, 만성 심폐 질환 등 다양한 그룹에 걸쳐 일관적으로 나타났다”고 결론 내린 까닭이다.

특히 전문가들의 시선은 당뇨병 환자와 만성 폐질환 환자의 비율이 총 15.6%에 달했다는 점을 향하고 있다. 앞서의 임상 전문가는 “코로나19는 당뇨병과 만성 폐질환 환자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며 “특히 코로나19는 중증 폐렴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만성 폐질환자들에게 백신이 효과가 있고 안전하다고 나타난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립보건연구원 고영호 박사팀은 지난 6월 당뇨에 노출된 혈관 및 뇌 성상세포와 뇌 조직에서 나타난 변화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 수용체 역할을 하는 ACE2 발현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CE2 단백질이 많은 당뇨 환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다른 환자보다 빠르게 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만성 폐질환도 다르지 않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안찬식 교수 연구팀이 최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최근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만성 폐질환이 있는 코로나19 환자의 사망위험도는 기저질환이 없는 경우보다 1.83배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저질환자 중에서도 만성폐질환과 당뇨병(1.75배)의 위험도는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화이자 백신이 만성 폐질환과 당뇨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점이 화이자 백신이 다른 백신에 비해 가장 먼저 FDA의 긴급사용 승인을 얻어낸 요인이 됐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앞서의 전문가는 “FDA 자문위원회 결정이 긴급사용 승인에 압도적 찬성 의사를 표한 이유”라며 “제한적인 데이터일 수 있고 향후 부작용 발생 상황을 지켜볼 필요성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백신의 유효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브리핑에 앞서 FDA가 건넨 자료에서 만성질환자들을 다수 포함시킨 점이 FDA의 마음을 움직인 원인으로 보인다”며 “화이자가 다른 제약사에 앞서, 세계적인 의약품 감시 기관인 FDA의 장벽을 뚫어낸 원인이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임상 디자인이 일종의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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