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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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권력 앞에 K-방역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백신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작용에 대한 면책권을 인정해줬다. 전문가들은 현재 백신 개발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부작용 등을 이유로 백신 공급을 늦추겠다고 말한 것은 백신을 뒤늦게 확보한 것에 대한 변명이고, 안전성이 진정으로 걱정됐다면 제약사에게 추가 데이터를 요청했어야 한다는 것.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오전 10시 30분경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도입계획을 공개했다. 브리핑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에 코백스(COVAX)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해둔 1000만 명분 외에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 각 2000만 회분, 얀센 400만 회분 등 총 3400만 명분을 추가 확보해 총 44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면책권’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백신을 원하는 대부분 나라에 면책권을 요구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일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제약사들이) 광범위한 면책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 국제적으로 거의 공통된 현상”이라며 “다른 백신에 비교하거나 다른 우리 의약품과 비교해서는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고 워낙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요구하고 있다. 불공정한 약관이나 계약에 대해 일정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어절 수 없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정기 고려대 약대 교수는 “현재로서는 일정부분 면책권을 주지 않으면 백신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공급 대비 수요가 훨씬 많고 국내 개발 상황도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며 “쉽게 설명하면 앞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다른 다리는 없고 뒤에서는 적들이 쫓아오는 상황이다. 건너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결국 위험부담을 안고 면책권을 줘서라도 백신을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임상 전문가도 “일반적으로 백신을 개발할 때는 접종받는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전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으로 인해 현재는 개인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공공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통상 6개월 이상을 요구하는 백신 안전성 평가 데이터를 2개월만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사들이 요구한 면책권은 장기 부작용에 대한 면책을 요구한 것”이라며 “단기 부작용은 1~2개월 내에 확인이 가능하지만, 후기 부작용은 최소 수개월 이상 모니터한 뒤에야 확인해 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제약사들은 각국 정부의 긴급한 요청으로 필수 임상 데이터만 최소한으로 모아 허가를 신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약사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면 어느 제약사가 백신을 만들려고 하겠는가”고 덧붙였다.

백신도입 TF(태스크포스) 위원이자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도 브리핑 이후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TF 위원으로서 지켜본 바, 질병관리청 직원들이 협상을 굉장히 잘해주고 있는 편이다. 세부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고 제약사들의 무리한 요구는 선을 그으면서 협상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백신 부작용이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화이자‧모더나 백신에 대해서는 그래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미국에서도 통과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 교수는 “브리핑에서 말씀드렸듯이 mRNA 백신 플랫폼은 기존 백신 대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암 백신 1상 과정에서 밝혀졌다”며 “DNA 백신과 달리 mRNA 백신은 핵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유전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앞서의 임상 전문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임상 데이터에 문제가 많아 FDA 승인도 한동안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브리핑의 ‘숨은 1인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가 백신 공급에 대해 늦은 책임을 ‘안전성’으로 모면하려고 했다는 것.

앞서의 임상 전문의는 “지금 상황은 사실 백신 확보가 늦어지면서 발표가 늦어진 것이고, 다른 국가의 안전성을 지켜보겠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며 “브리핑에서는 국내에서 추가 안전성 검증을 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국내에서 백신 안전성 검증을 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면 그것도 시간이 크게 소요된다. 결국 늦었다는 것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정 백신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려고 했다면 제약사에 FDA의 높은 수준, 2개월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수집한 안전성 데이터를 요구했어야 한다”며 “물론 실제로 제약사에 요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변명 대신 백신 수급이 늦어진 점에 대해서 국민께 사과하고 앞으로 최선을 다해 백신을 수급하고 안전성 부문도 해외 사례 등을 모니터하겠다고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김 교수는 ‘대통령의 말’에 주목했다. 대통령이 공정한 백신 구매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상황에서, 뒤로는 백신 선구매를 추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께서 7월에 8개국과 워싱턴포스트에 공동 기금을 내고, 백신 분배 관련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이후 9월 UN 연설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뒤로는 백신 선구매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도 제약사와의 선구매 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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