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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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사의 횡포가 매서운 세상이다. 소수의 환자 대상 희귀·희소질환 치료제를 개발한 뒤 높은 약가 제시로 각국 정부와 협상에 나서거나 급여권에 안착한 이후 수백 배 이상의 약가를 요구하면서 공급을 중단하는 일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국 정부가 그동안 다국적제약사의 의약품 특허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온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심각하다. 프랑스 제약사 게르베는 최근 간암 치료법에 쓰이는 조영제 ‘리피오돌’의 약가를 500% 인상하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간암 환자들의 수술 지연으로 정부는 결국 약가를 올려 재협상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도 뚜렷한 방어망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마땅한 대안은 없을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이동근 사무국장은 ‘조제실 제제’ 즉 조제실에서 제조한 의약품을 통한 특허권 회피를 제안했다. 팜뉴스가 이동근 사무국장의 최근 국회 토론회 발언과 인터뷰를 토대로, 희귀·희소질환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 향상을 위한 대안을 모색한 까닭이다.

사진. 건약제공
사진1. 건약제공
사진2. 건약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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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영석·이동주 의원실과 건약은 ‘코로나19 시대 의약품 접근권’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당시 “최근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희귀·희소질환 치료제들의 개발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전에는 화학 성분의 합성의약품에 한정됐지만, 점차 약의 형태가 다변화하는 중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세포 또는 유전자 관련 치료제부터 방사성 성분의 의약품까지, 다양한 형태의 치료제들이 개발됐다”며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치료제 시장도 점점 증가하고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이동근 국장은 또 “문제는 희귀·희소질환 치료제가 특정 환자들을 겨냥해서 만든 의약품이기 때문에 제약사가 독점권을 많이 남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는 점”이라며 “시장 논리에 따라서 생산이 중단되거나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사례들이 폭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내분비계 종양 치료제’ 루테시엄옥트리오탯은 네덜란드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됐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스타트업을 만들어 상품화에 나섰고 노바티스가 2018년 스타트업을 인수한 이후 가격이 5배로 뛰었다. 루테시엄옥트리오탯은 방사성 의약품이다.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 오캄비도 다르지 않았다. 낭포성 섬유증은 유전질환으로 32세가 되기 전 환자의 절반이 사망한다. 오캄비의 영국 약가(1년치)는 1억 5,700여만원이었다. 초고가 의약품이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버택스에 2016년 약가 인하를 요구했다. 협상이 실패한 이후 2016년부터 버택스는 오캄비의 영국 공급을 중단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역시 리피오돌 사태로 인해 당시 다국적 제약사의 요구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약가 재협상을 해줬다”며 “결국 리피오돌 약가는 4배나 인상됐다. 이런식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 독점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일종의 ‘협박’을 하면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병원 내 ‘조제실 제제’가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를 막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라며 “일반적으로 의약품은 제약회사가 개발한 제제가 있고 환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따라서 공급되는 조제실 제제와 약국 제제가 있다. 조제실 제제는 처방전에 의해 이뤄진 전문의약품이다”고 전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보통 병원 조제실에서 생산되는 제제다”며 “약국제제는 원외약국에서 생산이 되고 처방전이 불필요한 일반의약품이 조제 대상이다. 해외 각국은 독점권을 남용하는 제약사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조제실 제제를 활용 중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콜롬비아의 국립암센터(The National Cancer Institute)는 최근 고가의 방사성 의약품에 대항하기 위한 3개의 조제실 제제를 마련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병원에서는 고비용이 발생하는 CAR-T 치료에 대한 ‘병원 면제(특허 회피)’를 요청해 병원 내 조제로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제를 환자들에게 제공 중이다.

노바티스 킴리아는 대표적인 CAR-T 치료제로 고가 의약품이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세계 최초의 급성 림프성 백혈병·미만성거대B세포 림프종 치료제다. 미국 약가는 1인당 5억 3566만원(47만 5000달러)이다.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킴리아 의료보험 적용을 승인했을 당시 1회 투여당 3억 6000만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노바티스 측은 국내 공급을 위해 식약처 허가 신청을 마쳤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CAR-T 치료제는 병원에서 생산해야 하는 것이 맞다”며 “인체에서 수혈한 이후 면역세포인 T세포에 대해 유전자를 조작해서 배양한 이후 다시 투여하는 방법이다. 환자가 있는 곳과 거리가 멀면 T세포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송과정에서 시간이 오래걸리면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노바티스가 식약처 허가를 받고 약가 협상을 하고 급여권에 들어올 수 있다”며 “물론 가능성은 적겠지만, 노바티스가 희귀·희소질환 치료제 지위를 이용해 공급 중단을 선포할 경우 정부의 대책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처럼 조제실 제제를 활용할 경우 정부가 약가 협상을 진행할 때 다국적제약사의 일방적인 횡포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급종합병원들도 조제실 제조를 위한 인프라를 갖춘 상황이다. 2016년 서울대병원 첨단세포·유전자치료센터가 최근 식약처의 임상연구시험기준을 충족하는 GMP(세포치료제 제조소; Good Manufacturing Practice)를 구축했다. 서울성모병원도 2014년 사상 처음으로 진료형 세포 치료센터를 열였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최근 희귀·희소 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수요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그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치료제들이 개발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를 방지 하기 위해 개정법으로 조제실 제제를 통해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마지막으로 “모든 신약에 대해 조제실제제로 특허를 회피하자는 내용도 아니다”며 “다만, 조제실 제제는 환자들의 고가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위해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대안이란 뜻이다. 국회와 정부가 관련 입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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