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약 ·정책팀 최선재 기자

이의경 전 식약처장이 식약처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2일 퇴임사를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였기에 대과(大過)없이 처장으로서의 직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대과(大過)의 뜻은 ‘큰 허물’이다. 식약처장 업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자신감이 묻어난 퇴임사다.

이의경 전 처장은 자신의 대과(大過)가 없는 이유를 식약처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직원들의 땀방울이 모여 열정을 만들었고, 그 열정들이 더해져 현안의 파고를 넘어서는 저력을 만들었다. 어떤 난관도 용기 있게 헤쳐나갈 수 있었던 힘이다”라는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직원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 없이 퇴임한다는 의미다.

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감사를 전하는 것은 정부 부처의 기관장 퇴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내용이다. 이의경 전 처장과 동고동락한 식약처 직원들 입장에서 들어보면 눈물이 아른거릴 정도의 표현이 가득하다. 이의경 전 처장을 향해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직원들이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수사들이 곳곳에 보이는 퇴임사였다.

그런데, 퇴임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 없는 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임하자마자 저를 괴롭혔던 인보사,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인공 유방 사건 등 복잡한 현안들이 이어져만 갔다”는 대목이다. 퇴임사 전문의 맥락을 살펴보면, 재임 중 인보사 또는 인공유방 사태가 일어났지만, 직원들의 땀방울과 열정으로 위기를 돌파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인보사 사태’는 약 3800명의 환자들이 신장유래세포가 혼입된 유전자 치료제 주사를 700만원을 주고 맞은 사건이다. 식약처가 신장유래세포의 종양원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촉발됐다. 때문에 인보사를 맞은 환자들은 약 15년 동안 암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매년 병원을 찾아가서 장기 추적조사를 받아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암 발생 사례도 수차례 보고됐다.

이의경 전 처장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데도, ‘인보사’가 자신을 ‘괴롭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괴롭혔다’를 국어사전 정의대로 해석하면, 인보사 때문에 몸과 마음을 고통스러웠다는 자기 고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보사 환자들을 외면한 발언이다. 인보사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기관 수장의 퇴임사로 쓰일만한 말이 아니란 얘기다. 언제 암에 걸릴지 모르는 환자들의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식약처 대응은 처음부터 꼬였다. 식약처는 주성분이 바뀐 사실을 인지한 이후, 인보사 판매 중단조치를 곧바로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인보사는 무차별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유통됐다. 환자들을 위한 장기추적조사 계획을 발표한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장기추적조사에 대한 병원들의 협조도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보사 환자 소송 모임마다, 아우성이 여전한 까닭이다.

‘인공유방 희귀암 발생 사건’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부터 거친표면(텍스처드) 인공유방 보형물을 이식한 환자들 중 일부가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IA-ALCL)이라는 희귀암에 걸린 사례가 전세계 곳곳에서 보고됐다. 하지만 식약처는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판매 중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엘러간사의 인공유방 보형물은 다수의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식됐다. FDA가 판매 중단 조치에 들어간 이후 식약처도 같은 절차에 돌입했지만 ‘뒷북 대응’에 불과했다. 약 1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국내에서는 벌써 3명의 환자가 희귀암에 걸렸다. 환자 대책 발표 당시 “국내 환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는 식약처의 발표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의경 전 식약처장은 인공유방 사건을 언급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표현을 썼다. 자신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식약처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약 11만 명의 엘러간 인공유방 보형물 이식 환자들은 불안과 눈물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환자 상당수는 가슴 보형물을 교체하거나 피막을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술대 오르고 있다.

이의경 전 처장을 향해 묻고 싶다. “과연 이런 현실을 보고도, 식약처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인가”라고 말이다. 적어도 환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괴롭혔다”라거나 “가슴을 쓸어내렸다”와 같은 표현은 퇴임사를 통해 나올 표현들은 아니다. 환자들의 눈물이 온전히 닦이기 전까지, 그 어떤 성공도 있을 수 없다. 가장 치명적인 대과(大過)는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