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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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최근 약사·한약사 면허가 없는 일반인의 약국 개설을 금지하는 약사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일명 ‘사무장 약국’에 대한 불허의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약사 사회는 당연한 결정이라면서도, 한약사의 약국 개설 문제도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복약지도가 비일비재해 직능 범위를 침범한다는 것.

팜뉴스 취재결과 실제로 한약사가 약국을 개설한 뒤,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면서 약성분 등에 대해 복약지도를 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는 4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약국을 찾았다. 외관상 일반 약국과 차이가 없는 평범한 약국이다. 해당 약국은 처방조제를 하지 않고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국에 들어서자 흰 가운을 입고 있는 A씨가 인사를 한 뒤 어떤 약을 구매할 것인지 물었다.

기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종합감기약과 소염진통제 구매를 시도했다. 두 약품은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약국에서 가장 자주 구매하는 약 중 하나다.

기자가 나프록센 성분 소염진통제가 있는지 묻자 A씨는 “있기는 한데 나프록센은 약효가 세서 추천하지 않는다”며 “평소에 나프록센을 자주 먹었다면 이부프로펜이나 덱시부프로펜 성분 진통제는 잘 듣지 않을 것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도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종합감기약에 대해서는 “우리 약국에서는 이 약이 잘 팔린다. 한방 성분이 함께 들어 있어 많이들 찾고 있다”며 “연질캡슐 제제도 있는데 보관할 때 조금 신경을 써야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의 명함을 자세히 보니, 그의 이름 앞에는 ‘한약사’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한약사가 운영 중인 약국이었던 것.

처방조제도 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우리는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판매만 한다. 처방조제를 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A씨는 한약조제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일반의약품으로 나온 한약만 판매한다. 직접 조제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약국을 나올 때까지, 명찰에 적혀있는 직함을 제외하면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라는 점을 알아볼 길이 전혀 없었다.

문제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복약지도가 약사 직능에 대한 침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약사법 2조12항에 따르면 복약지도는 ‘의약품의 명칭, 용법ㆍ용량, 효능ㆍ효과, 저장 방법, 부작용, 상호 작용이나 성상(性狀)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진단적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구매자가 필요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약사 사회는 일반의약품 복약지도도 조제에 대한 복약지도와 마찬가지로 약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일반의약품 복용에도 약사의 전문적인 복약지도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의약품의 오·남용과 혹시 모를 부작용을 막기 위함이다”라며 “한약이 아닌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할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한약사의 복약지도는 일반인이 복약지도를 하는 것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서의 사례를 살펴보면, 나프록센의 경우 과량 복용할 경우 급성신부전의 위험이 있고, 위장에도 좋지 않다. 나프록센 250mg은 일반의약품으로 지정됐지만, 고용량인 500mg은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된 까닭”이라며 “한약사의 직능으로 이 같은 상황까지 대비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

의료법 전문가인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약사법 21조에 따르면 약사와 한약사는 약국을 개설할 수 있고, 50조4항에 따르면 약국개설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복약지도를 할 수 있다”며 “현행법으로는 일반의약품 복약지도를 ‘약국개설자’에 위임하면서 한약사도 일반의약품 복약지도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한약사의 복약지도는 위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정부 차원에서 직능 침범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약사에게는 약사의 고유 권한이 있고, 한약사에게는 한약사의 고유 권한이 있다”며 “전문지식이 부족한 한약사의 복약지도로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한약사가 한약이 아닌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한약사회는 한약사와 약사가 정부와 함께 논의해 직능 권한을 다시 명확히 규정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반론했다.

대한한약사회 관계자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복약지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약사 사회의 목소리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약국에서 약사들이 우황청심원·갈근탕 등 한약을 처방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달리 생각하면 한약사들이 약사들에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약사 학사과정을 살펴보면 양방에 대한 약물학도 40~50학점가량 수강하도록 돼 있지만, 약사들은 한약학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는다”며 “서로의 직능 권한을 존중할 수 있도록 한약사와 약사, 정부가 함께 서로의 직능 권한에 대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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