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이 논란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약물로 인한 임신중단이 가능하다’는 항목이 포함된 까닭이다. 약물을 통한 임신중절에 대한 원론적인 찬반 논란부터 도입 이후 처방조제의 주체를 놓고 의·약사 간 분쟁 조짐까지 일면서 미프진은 한동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10월 12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신중단 방법으로 약물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 제2조제7호를 살펴보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는 용어를 ‘인공임신중단’으로 바꾸고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신중단의 수단으로 약물이 포함되면서, 일명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미프진 [출처=제약사 엑셀진 홈페이지]

미프진은 미국 제약사 단코(Danco)의 임신중절제로 미국 내에서는 ‘미프프렉스’, 미국 외 국가에서는 ‘미프진’으로 판매 중이다. 현재 미프진은 미국·캐나다·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 61개 국가에서 유통·처방을 허가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05년부터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공인했다.

일단 법 개정 추진과 함께 미프진의 국내 도입은 어느 정도 순풍을 탈 전망이다. 국정감사 기간 이미 그 조짐을 보인 까닭이다.

식약처는 21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미프진 관련 서면 질의에 “법 개정에 맞춰 국내 불법 유통·판매되는 미프진에 대한 품목허가에 합리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인공임신중절약이 안전하게 쓰이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 업체 품목허가신청 등 약물 도입 추진 시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법 개정 이후 미프진 도입 추진을 사실상 공언한 것.

다만 제약업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임신중단에 대한 윤리성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데다, 본격적으로 법 개정이 이뤄진 상황이 아니라 일단은 분위기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사 관계자는 “현재 기존 사후피임약을 취급하던 현대약품, 메디톡스, 명문제약 등이 타의적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입을 추진 중인 제약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임신중단에 대한 가치판단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업계에서도 도입을 공언하기 조심스런 눈치”라며 “아직 입법 전이라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 입법이 완료되거나 적어도 본격적으로 입법이 추진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제약사들도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일단 추세를 지켜보는 단계”라며 “국내 도입이 이뤄진다면 미프진에 대한 미국 이외 지역 판권을 갖고 있는 엑셀진과 라이선싱 계약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제약사 중 엑셀진과 협상하고 있는 회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약 입법이 완료돼 국내에 미프진이 도입된다면, 처방 기준은 어떻게 될까.

행정부가 도입 추진 중인 임신중단 기준보다는 다소 짧을 가능성이 크다. 10월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가 입법예고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까지는 임신부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임신중단이 가능하고, 성범죄·근친·질환 등 특정 사유에 대해서는 24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한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현재 10주 이내 임신부에 대해서만 미프진 처방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내 미프진 허가가 처음 이뤄진 2000년에는 7주 이내 임신부에게만 허가가 이뤄졌지만, 이후 안전성과 효용성이 어느 정도 입증되면서 2016년부터 10주 이내 임신부에게도 처방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최근 학계에서도 10주 이상 임신부의 미프진 사용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효용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부작용의 위험성도 크다는 것.

미국·멕시코·베트남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미프진을 임신 70일 이상 임신부에게 사용할 경우, 임신중단 성공 확률이 떨어지고 부작용 발생 확률은 상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피임(Contraception)’ 2020년 5월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임신 10주차(64~70일)과 임신 11주차(71~77일) 중 임신중단을 처방 받은 임신부 700여 명을 대상으로 미프진을 처방한 뒤 경과를 확인했다. 그 결과 10주차 임산부의 임신 중단 성공률은 92.3%, 11주차는 86.7%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메스꺼움·통증·출혈 등 부작용 확률은 10주차 3.6%, 11주차 8.7%로, 단 일주일 차이만으로도 임신중단 성공률과 부작용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료계도 경고에 나섰다. 4개 산부인과 단체(대한모체태아의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입법 추진 중인 임신중단 허용 기준을 ‘10주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며 “추후 산모에게 난임·유산·조산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밝혔다.

약사 사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현재 정부는 14주 이내로 입법 추진 중인데, 학계와 의료계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듯 10주 이후 임신부에게 미프진 처방은 위험하다”며 “10주 이후 임신부에게는 처방되지 않도록 식약처가 입법 이후 미프진의 복용·처방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프진의 처방 주체를 놓고는 의·약사간 갈등이 발생할 전망이다. 처방조제를 모두 의사가 맡아야 하는지 아니면 의약분업에 따라야 할지에 관한 직능 분쟁의 양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안전한 사용과 여성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약분업 예외약품으로 지정해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정확한 임신진단과 함께 안전하게 투약하도록 해야 한다”며 “약물 사용 전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임신 주수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자궁 외 임신이나 과다출혈 위험성이 있는 경우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약사회는 미프진의 의약분업 예외약품 지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모든 약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며 “그래서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처방검토 및 복약지도를 위해 분업을 도입했는데, 미프진만 분업예외로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분업예외 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약국도 환자정보보호 의무를 지니고 있다”며 “의사단체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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