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

사진. 정형준 위원장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의 휴대 전화는 쉴 틈이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진료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 전화를 꺼놓는 것이 일상이지만 정형준 위원장은 ‘항시 대기’다. ‘환자’ 또는 ‘의료’ 영역에서 공적인 가치들이 훼손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기자들이 정형준 위원장에게 수소문하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진료중이라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친분이 없는 전화 상대방에게 보통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나중’을 기다리지 않는다. 반면 정형준 위원장은 다시 연락이 ‘100%’ 온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이 편한 시간대를 알려준다. 그 시간대에 전화하면 어김없이 전화를 받는다.

취재를 위해 연락을 취할 때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의사라는 점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화를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언제나 단호하고 분명했다. 인보사 문제를 “박근혜 정부가 포함된 코오롱 게이트” 또는 “제2의 황우석 사태”로 규정할 때는 다소 직설적이고 거칠게 느껴졌지만 날카로운 논리가 뇌리에 박힌 경우가 많았다.

그런 힘이 나오는 원천이 궁금했다. 본지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원진녹색병원에서 정형준 위원장을 만난 이유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 인터뷰

정형준 위원장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에 가입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며 “저보다 후배인데 빨리 졸업한 최규진 인하대 교수의 영향이 컸다. 최 교수가 졸업한 이후 ‘선배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단체에 가입해서 교류를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인의협이 눈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숙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진료 지원을 하는 국내 유일한 단체가 인의협”이라며 “2007년 최 교수 추천으로 가입했다. 회비만 내고 있다가,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원격의료, 의료채권, 법인약국 등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발전 기본법이 쏟아져 나올 때 의료영리화에 반대하면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는 가치관을 모토로 1987년 187명의 의사들이 모여 창립한 시민단체다. 그로부터 33년 동안 인의협은 갈 곳 없는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 차가운 아스팔트와 철탑 위의 농성자, 차별받는 이주노동자 등 아픔이 깃든 현장을 파고들어왔다.

특히 인의협은 목숨값을 매기는 비인도적 정책이 고개를 들 때면 어김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상업 자본’이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때마다 정형준 위원장이 인의협과 함께 투쟁해온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 의료영리화 저지, 기억에 남아”

그렇다면, 정형준 위원장이 인의협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뭘까.

그는 “시민단체의 가장 큰 역할은 권력 감시”라며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영리병원을 다양한 경로로 허용하려고 했다. 그런 움직임을 막아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진료 가격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영리병원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당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노골적인 의료산업화 정책을 저지해냈다”며 “영리병원은 결국 철회됐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에 밀린 것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영리병원을 직접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정형준 위원장의 수년 동안 집중해온 가치는 ‘공공의료’다. 그는 “의료는 공공재다. 필수재는 선택적으로 할 수 없다. 아프면 결국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의료는 공공재가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에 불이 나면 필수적으로 꺼야지, 선택적으로 끌 수 없다”며 “주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에 감염 되면 우리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확진자를 반드시 격리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맹장 수술도 ‘옵션’이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며 “이 부분을 상품화하는 것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다름없다. 소방과 경찰을 민영화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의료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전 세계적인 지지를 얻는 까닭이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중반에 다다를 무렵, 팜뉴스 취재진은 ‘의사 국시 재응시’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 총파업’이 일단락됐지만, 후폭풍은 여전한 상황이다. 전공의들은 병원에 복귀했지만,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논란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형준 위원장은 의사 총파업 당시 의협을 포함한 파업 주도 집단을 강하게 비판해온 장본인이다. 그의 의견이 궁금했던 까닭이다. .

“정부가 수차례 재응시 기회를 줬는데도 의대생들은 의사 국시를 보지 않았다.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의대생들이 져야 하지 않냐는 것이 국민 다수의 여론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망설임 없이 질문을 던진 까닭이다.

“의사 국시 재응시 불허,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꼴”

정형준 위원장은 “의대생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며 “그 사람들이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해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엄한 사람에 대한 화풀이하는 꼴이다. 의사 국시를 보겠다는 성명에 사과가 없는 점은 분명 잘못됐다.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하는데 정상적으로 집단 휴진을 선동하고 이끈 것은 의협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의협은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필요성을 설명하기는커녕,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라며 “전문가 단체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방임하고 있다. 더구나 파업 당시 선동하고 부추겨온 대학병원장과 교수들은 지금껏 무슨 피해를 봤나”라고 반문했다.

정형준 위원장은 “정부가 의사 수 증원 문제를 철회했기 때문에 의협도 자기들의 의견을 관철하고 끝난 셈”이라며 “전공의들도 병원에 돌아갔는데 학생들이 시험 보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고 덧붙였다.

정형준 위원장은 의사 국시 문제도 공공의료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들이 의대생들에게 재응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핸디캡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손해는 국민이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단순히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철없는 학생들이 벌인 문제에 대해서 심판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그 책임을 학생들이 시험 못 보는 쪽으로 결론을 내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죄를 지었으니 벌을 주자는 것은 사회적 관점에서는 다른 이야기다”며 “우리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응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약 10년이 지나도 2700명 의사가 부족한 것은 여전한 ‘팩트’라는 것이 정형준 위원장의 의견이다. 단순히 올해만 부족한 게 아니라, 결국 부족한 상태로 최소 5년에서 10년 동안 공공의료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인기과에 의사들 기피 현상 더욱 심해질 것”

정형준 위원장은 “공공의료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의 민간 시스템의 문제를 방치한 상태에서는 문제가 커진다”며 “전공 과목은 시장경쟁 하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결정되는데 지금 인턴들이 올해 지원을 하고, 내년이 돼도 인기과에 지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기과들이 내년까지 그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며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인기과들이 내년에 전부 찬다는 뜻이다. 올해 레지턴드 생활을 시작하는 인턴부터 당장 영향을 줄 것이다. 흉부외과 등 기피과를 더욱 안 가는 쪽으로 말이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형준 위원장은 “내년에 국시를 보면 2700명과 3000명을 합해서 5700명이 된다. 이 사람들이 전부 인턴 수련을 못한다. 그 사람들이 계속 적체되는 것이다. 문제가 한 번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계속 누적된다”라고 밝혔다.

정부 여당 등 아직도 의료가 ‘공공재’라는 기본적 전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자꾸 헛발질로 일관해온 점도 문제라는 것이 정형준 위원장의 지적이다.

정부는 7월 23일 2022년부터 의과대학생을 10년간 4000명 더 뽑고 2024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공공의대 설립안을 내놓았다. 매년 정원 400명 중 300명은 전액장학금의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뽑고 의사 면허 취득 후 지역 의료기관에서 10년간 복무하는 것이 의무다. 나머지 100명은 역학조사관 등 특수전문분야(50명)와 제약 바이오 등 의과학자(50명)로 양성하는 것이 골자였다.

정형준 위원장은 “공공의대 설립안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졌다”며 “공공의료 확대를 통한 지역의료 활성화가 목표인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300명의 지역 의사들은 대부분 사립지역병원을 위한 것인데 결국은 지역사회로 연결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의무복무기간에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시스템 확립위해 진정성 있는 대안 마련해야”

이어 “나머지 50명은 제약회사로 가는 산업체 의사 인력이었다”며 “얼마나 바보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냐면 의료기기, 의약품 개발 등에 필요한 의사는 임상경험이 있는 전문의다. 50명은 임상 경험이 없는데 의대를 나오면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반문했다.

정형준 위원장은 “이렇게 부실한 방안을 내놓기 전에 시민사회나 다른 전문가와 토의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이런 사고들을 해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국민 생명을 볼모로 의사 총파업을 주도한 의협도 문제지만,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방안도 ‘허점 투성이’였다는 것.

그렇다면 대안이 뭘까.

정형준 위원장은 “진정성 있는 방향이 담겨야 한다”며 “그래야, 시민사회와 국민 지지를 받고 기득권 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 의사 집단이 반발해도 뚫을 수 있다. 먼저 공공부분 투자를 늘려 필수 의료 분야에서 수련받는 의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지역 수가 가산 정책으로 의사들이 지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당장 정부가 2018년도 지역 거점 책임의료기관 지정과 관련해서 거의 진척이 되고 있지 않은데 그것도 빨리 지정해서 예산안을 발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구체적인 대안을 실천해야 하는데 갑자기 파업 사태가 다 끝나고 나니까 제일 힘없는 학생들이 국시 응시 여부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것 자체가 넌센스다.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형준 위원장은 “정부가 불쌍한 애들을 때리고 있는데, 맞고 있는 쪽도 때리는 쪽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인 토론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보건의료 정책 부분은 국가와 사회의 정책이다. 의대생 국시 재응시 여부가 사회적 문제란 뜻이다. 정부가 진정성 있는 대안으로 국민들과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핵심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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