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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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톨릭 사제이지만 이따금 불교 경전(sutra)을 읽고 공부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과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그 궁극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탐구와 깨달음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인 법구경(法句經)에는 인간의 언어에 관련한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다. 그중에서 몇몇 내용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하며, 말을 삼가고 잘 다스려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르침들이 주어진다. “진실만을 말해야 하리.”(제17장 Kodha Vagga 忿怒品, 제224편) “현인(賢人)은 말을 다스리고 생각을 다스리네.”(제17장 Kodha Vagga 忿怒品, 제234편) “말을 살피고 마음을 잘 억제하라.”(제20장 Magga Vagga 道行品, 제281편) “혀를 잘 다스리니 좋네.”(제25장 Bhikkhu Vagga 比丘品, 제360편) “말을 잘 다스리는 것이 좋다.”(제25장 Bhikkhu Vagga 比丘品, 제361편)

둘째, 말함에 있어 화를 내거나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들이 발견된다. “그 말을 들은 이는 보복하려 들 터이니, 누구에게라도 가혹하게 말하지 말라. 악의 있는 말은 실로 고통의 원인이며 그 응보가 그대에게 돌아오리라.”(제10장 Danda Vagga 刀杖品, 제133편) “화를 내서는 안 되리.”(제17장 Kodha Vagga 忿怒品, 제224편) “악언을 하지 않도록 잘 살펴 지키고 그대 말을 통제하라. 악언(惡言)을 포기하고 선언(善言)을 가꾸어라.”(제17장 Kodha Vagga 忿怒品, 제232편) “진실한 말을 하고 말로 어느 누구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 그를 일러 바라문이라 하네.”(제26장 Brahmana Vagga 婆羅門品, 제408편)

셋째, 아무리 훌륭한 말도 실천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다른 이들을 가르친 그대로 행동해야 하리.”(제12장 Atta Vagga 己身品, 제159편)

그런데 매우 신기하게도, 그리스도교 경전인 신약 성경에서도, 위의 세 가지 가르침과 각기 비슷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야고보 서간 1장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에서 불교 법구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첫째, 사람은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19절) 둘째, 화를 내며 말을 사납게 하지 말라는 점이다.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19-20절) 셋째, 인간의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점 역시 비슷하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이처럼 불교의 법구경과 그리스도교의 야고보 서간은 모두 인간의 언어에 관한 성찰을 제공하는데, 이들은 모두 말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말로 상처 주는 것과도 같은 인간 언어의 부정적 측면을 정화하고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가르침이며, 바로 그러할 때 인간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성과 의미통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암시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향하여 ‘비폭력대화’(NVC: Non Violent Communication)를 증진시키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 언어의 이러한 비폭력성에 대한 강조가, 그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의 소극적 차원으로만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신약 성경의 야고보 서간 1장 21절에서는 의미통교 언어의 긍정적 역동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인간 구원에 관련된 거룩한 말씀, 즉 신적인 말씀(divine Word)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와 같은 거룩한 말씀을 받아들여 체화(體化)시켜 살아갈 때, 그 인간의 언어 역시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통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찰에 비추어볼 때, 인간의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의미통교’ 언어의 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 언어가 의미통교 차원에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비폭력적인 ‘존중’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 인간 언어가 의미통교 차원에서 작용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을 돕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통교 언어란, 실제로 말하는(verbal) 행위는 물론이고 그 외에도 직접적인 말이 아닌(non-verbal) 요소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즉, 말없이 그저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따스한 공감의 손길은 천만마디의 말보다도 강력한 치유의 힘을 전달한다. 이러한 언어학적 전망은 보건의료 현장을 위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드러낸다.

즉, 돌봄을 통해 한 인간의 치유를 증진시키는 것은, 바로 ‘존중’과 ‘지지/격려’의 의미통교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통교 언어는 환자와의 유대감(connectedness) 형성과 공감을 통해, 환자가 영적인 차원에로 진입하는 것을 돕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말했듯이, 진정한 상호 인격적 관계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영적 특성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적 차원이란 곧 인간의 초월지향성을 가리킨다. 즉,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질병과 고통 등 그 실존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통한 인격적 존중과 지지는 한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 즉 영적 체험이 가능하게끔 돕는, 매우 아름다운 돌봄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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