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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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2020년 3월,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 함께 나서주신 약사님들 고맙습니다’

# Scene 2
2020년 7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3차 추경안 심사과정 중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보건의료인들 마스크 무상공급에 약국과 종사자들이 제외된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편의점에서 팔았다면 편의점주에게 마스크를 제공해야 하나?”

 3월 공적마스크 공급으로 일선의 약국가에서 한바탕 난리였을 때, 지방 병원 약제부에서 근무했던 나는 공적마스크 판매의 어려움을 건너서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확산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동네약국에 사람들이 줄서서 마스크를 사는 모습도 코로나 초기에는 그리 볼 수 없었다. 마스크 5부제까지 시행하며 바삐 돌아가던 그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현장을 잘 알지 못했다.

 3월 청와대에 올라온 대통령의 글을 보고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약사들의 고충에 대한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말이었을까, 그저 성난 약사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였을까.

누군가는 ‘약국에게 왜 마스크 독점판매권을 주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묵묵히 마스크 공급 전선에 동참한 약사님들은 설사 그것이 립서비스였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보건의료인으로서의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받아들였을거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공급 시스템이 채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력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에도 못 미치는 그 일을 받아들이고, 가끔 들려오는 ‘약사님들 수고하십니다’에 뭉클해 하며 이번 일로 약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보자고 얘기했던 건 비단 현장의 약사님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적마스크 판매가 종료되어가는 시점에 부총리 입의 말에서 들려왔던 ‘편의점주=약사’ 발언은 과연 ‘부총리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귀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세간의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거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매우 허탈하게.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세가지 관점 중 하나라고 한다. 직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 어떤 이는 일을 돈을 버는 수단(job)으로, 어떤 이는 일을 경쟁에서 위로 올라가는 과정(career)으로, 어떤 이는 일을 소명(calling)으로 여긴다.

대통령이 고맙다고 언급한 ‘약사’와 편의점주와 다를 바 없는 ‘약사’가 같은 약사임에도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러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편의점주와 다를 바 없는 약사는 약사의 역할을 돈벌이에 한정 지어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시선은 주위에서 숱하게 느껴왔다. 감기로 인해 찾아온 환자가 인후통과 가래를 같이 호소하여 거담제와 진통제를 같이 주면 쓱 밀고 ‘종합감기약이나 주세요.’라는 얘기가 돌아오는가 하면, 장염에 고통받는 환자에게 ‘유산균’을 권하면 이 약사가 영양제를 팔려고 하는가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본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주변 직장인 지인들과 세금 관련 얘기를 나누다가 직장인들 유리 지갑이란 얘기에 약사들도 조제료를 나라에서 다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란 얘기를 했더니, 그럼 영양제와 같은 일반 약들은 어떠냐고 물어본다. ‘그것까지 다 알 수는 없겠지.’ 했더니 ‘아, 그래서 예전 집 앞 약국 약사님이 그렇게 일반약만 팔려고 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얘기에 맥이 탁 풀려 이걸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하는가 좌절스러웠던 적이 있다.

약국에서 이러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일할 맛이 안 난다’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이런 시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아직까지도 이에 쿨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일선 약사로서의 시간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애로사항을 선배 약사들과 나누면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내 얘기를 고마워하는 환자들도 있다고, 그 환자들을 바라보며 일하는 거라는 얘기가 돌아온다. 선배의 마지막 충고는 이러했다. ‘나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그 생각을 놓지 말라고. 그 때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도 스스로 그러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일을 소명으로 보는 사람은 일 자체가 목적이며, 일을 통해 타인을 돕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선배는 환자를 돕는 약사의 역할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환자를 돕고, 조금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 확신을 가지고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다.

거창하진 않아도 그때 선배의 말은 참 멋있었다. 근로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은 약사로서의 나의 역할을 외부 시선에 맡기기 때문이다. 스스로 약사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건 나라는 개인의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로 어떤 점을 꼽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일에 대한 관점이 결정되고, 관점에 따라 일을 하는 태도와 행동이 달라진다고 한다. 태도와 행동이 다르니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성과와 행복도 달라진다.

직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이라는 세 관점은 상대적인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중요한 요인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약사는 편의점주’라는 말에 많은 약사들이 분노하는 것은 약사의 역할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한정 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 청원에 어느 약사님의 이러한 글이 올라와 있다. “홍 부총리의 발언처럼 소매업 점주라서 이렇게 노력해 온 것이 아니다. 보건의료인, 대한민국 약사로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설령 외부의 시선이 약사의 공적인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약사인 내가 스스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임한다면, 이는 나의 태도와 행동에 나타날 것이고, 일에 대한 성과와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일로 상처받았을 주위의 약사님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비록 외부의 환경이 우리의 근로 의욕을 꺾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약사의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기에.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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