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사진=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사진=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보톡스 시장 점유율 1위’ 메디톡신이 14년 만에 퇴출됐다.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을 제조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허위로 조작했다는 이유에서다. ‘거대제약사’ 메디톡스의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제품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측면에서 업계의 관심이 쏟아진 사건이었다.

‘메디톡신 퇴출 사태’의 스모킹건을 제공한 율사(律士)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구영신 변호사다. 구영신 변호사는 지난해 5월 제보자들을 대리해 국민권익위에 메디톡스사의 위법행위를 공익신고 했다. 약 1년이 넘는 조사 끝에 결국 메디톡스는 식약처의 철퇴를 맞았다. 그의 끈질긴 집념이 이끌어낸 열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는 그동안 ‘다나의원 집단 C형간염’, ‘성형외과 유령 수술’ 등 굵직한 사건 속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공익 소송을 맡아왔다. 수년간 환자들의 자문에 응답한 그는 환자들이 목소리가 아우성치는 현장 곳곳을 누벼왔다. 본지가 최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구영신 변호사를 만난 까닭이다.

지난 1년간 메디톡스 관련 뉴스 보도가 쏟아질 때마다 구영신 변호사는 딱딱한 지면에 새겨진 활자로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신문 지면에서 느껴지는 그의 이미지는 단호하고 올곧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만난 구영신 변호사의 모습은 상냥함과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보건정책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김화중 교수님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교수님이 입법활동을 위해 준비한 통계자료를 활용해 석사논문을 작성하게 되었고, 법이 개개인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으나 우연히 법서를 접했다.”

그는 “대부분 한자였는데 너무 재미있고, 제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4권의 책을 전부 읽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법대생이 아닌 비전공자도 사법시험에 응시하는지 궁금해서 주변에 알아보니 의외로 비전공자도 많이 합격한다는 걸 알게 되어 유학을 포기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구영신 변호사가 읽었던 법서는 곽윤직 교수의 민법강의였다. 흔히 법대생들 사이에서는 법학 입문서로 쓰이는 민법강의는 한문과 어려운 내용의 법학 지식이 가득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서울대 간호학과 출신 구영신 변호사의 삶의 궤적이 ‘법학’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구영신 변호사는 결국 3년 6개월간의 준비 끝에 2008년 사법시험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의료전문 로펌에 들어가서 의료분쟁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의료 관련 민형사는 물론 행정 사건이 굉장히 많은 곳이었다. 다양한 사건을 다루면서 변호사로서의 전문성을 쌓아 갔지만, 육아와 변호사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육아를 위해 공공기관으로의 이직을 고민하던 중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설립된다는 걸 알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 추진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재학시절 법서에 매료됐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료분쟁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의료인을 위해 설립된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의료사고의 신속·공정한 피해구제와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2012년 세워졌다.

“의료 소송은 너무 장기간 진행된다. 의료인과 환자 양측이 힘을 쏟지만 정작 나오는 결과는 크지 않았다. 중재원은 조정으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여 환자와 의료인이 일상에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설립됐다. 그런 부분이 공감이 갔다. 설립 추진단 때부터 들어가서 다른 분들과 함께 조정절차 및 설립초기에 필요한 각종 규정을 만들었다.”

변호사로서 그리고 중재원 심사관으로서 수많은 의료 사건을 처리하면서, 의료인의 단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건보다는 탐욕이나 편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억울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구영신 변호사가  2014년 '환자샤우팅카페'를 참여하면서 환자단체연합회 자문단 활동을 시작한 계기다.

그는 “의료사고는 교통사고처럼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사고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건들은 중재원이나 소비자보호원을 통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정말 억울한 사건들은 탐욕이나 편법으로 인해 발생한다. 법과 제도의 빈틈을 이용한 사건들은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외견상 단순한 사고처럼 보인다. 그래서 피해를 입은 환자나 환자의 가족은 답답하고 억울함에 한이 맺히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샤우팅을 통해 억울한 사건을 접하면서 법과 제도의 빈틈이 더욱 잘 보였다. 자연스럽게 환자들을 위해서는 법적인 증거와 논리로 지원해 주고 환자단체연합회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법률 자문을 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열심히 하면 ‘전문성’은 따라 온다

“사람들은 제가 간호사로 일한 것이 사건 파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저는 간호사로서 현장 경험이 없다. 대학시절 실습이 현장 경험의 전부였다.”

구영신 변호사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의료 현장 경험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구영신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밤을 새워 진료기록을 들여다보고 모르는 것은 의사나 간호사 지인에게 물어보고 또 분석했다.

“모든 사건은 사실관계 파악이 최우선이다. 진료기록을 보면 사건의 경위와 의료진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시간대별로 어떤 의료행위가 일어났는지 알려면 진료기록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진료기록을 분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분석해준 진료기록만으로는 내가 알아야 하는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의학서적을 옆에 두고 공부하면서 일을 했다.”

결국 구영신 변호사의 전문성은 점차 ‘다나의원 집단 C형간염’, ‘성형외과 유령 수술’ 등 공익소송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다나의원 사건은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97명의 환자들이 C형간염에 감염된 사상 초유의 의료사건이었다.

구영신 변호사는 환자들을 대리하여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다나의원 측과 조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다나의원은 손해배상을 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구영신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통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도록 했다.

“다나의원은 남은 주사약제를 재사용하도록 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그래서 민사소송으로 가더라도 쉽게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환자들은 대부분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고 특정 종교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사건을 세심하게 다뤄야 했다.”

구영신 변호사는 “다나의원은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태였다”며 “그래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조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조정 초기부터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이용해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전했다.

결국 다나의원은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쉽게 조정에 응했고 피해자들은 신속하게 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구영신 변호사가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다.

(구영신 변호사 기획 인터뷰 ‘2탄’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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