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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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시 유급휴가를 주도록 하는 법안을 향해 각계각층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혈액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이지만 사업주와 직장인을 중심으로 ‘실효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형국이다.

휴가 사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현실을 간과한 것은 물론 악용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 측은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업주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는 ‘황당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래통합당 엄태영 의원은 최근 헌혈자에게 유급 휴가를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혈액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업주로 하여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수의 범위에서 근로자(공무원인 근로자를 포함)가 헌혈을 하는 날을 유급휴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엄태영 의원은 “최근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으로 안정적인 혈액 관리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며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헌혈 참여를 증진 시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을 통해 혈액의 안정적인 수급과 관리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발의 취지를 전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 혈액보유량 기준은 하루 평균 5일분 이상이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에 못 미치는 4.7일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공무원이나 근로자가 헌혈을 하면 사용자는 유급휴가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법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 A 씨(33)은 “연차 휴가를 쓰기도 벅찬 환경이다. 법정 연차 휴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현실에서 누가 헌혈을 이유로 휴가를 쓰겠나”며 “헌혈을 하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쉬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마음이다. 헌혈 인센티브로 휴가로 주면 된다고 생각 자체가 난센스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들의 반발도 상당하다. 화장품 수출 회사를 운영하는 B 씨(35)는 “직원들이 악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며 “쉬고 싶을 때 헌혈을 핑계 삼으면 사장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공무원은 가능할 수 있어도 사기업에 도입하면 회사의 손해가 극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엄태영 의원실 측은 혈액 수급난 문제를 풀기 위해 국회 차원의 대책이 시급했다는 입장이다. 엄태영 의원실 관계자는 “실효성 논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런 사고라면 최저임금, 주52시간 제도 등 아무것도 도입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혈액 수급 현장이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의 필요를 충족할 수는 없다”며 “일단은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국회가 개정안을 통해 헌혈을 장려하는 사회문화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절실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사업주가 근로자가 헌혈을 할 경우에도 유급휴가로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주의 유급 휴가 부여는 강제 조항이 아니다. 개정안은 ‘헌혈을 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수의 범위에서 유급휴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즉 강행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 법조계에서도 ‘실효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헌혈휴가로 인해 업무공백이 생기는데 돈까지 줘야한다면 누가 반기나”라고 반문하면서 “근로자만 덕을 볼 수 있는 법안으로 사업주에 일방적인 부담만 지우고 있다. 당연히 사업주는 꺼릴 수밖에 없는데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헌혈 증진을 위한 유인이 약하다. 실효성이 없는 법안이란 뜻”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업주 입장에서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고 법령상 필수 참여 의무가 있는 예비군 훈련도 아닌, 헌혈을 이유로 유급휴가를 처리할 이유가 없다”며 “차라리 다회 헌혈자에 대한 공공시설이용료나 공용주차장 감면 등의 정책이 유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법안으로 ‘헌혈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엄태영 의원 측은 ‘임의규정’ 때문에 오히려 사업주에게 부담이 적다는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엄태영 의원실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휴가로 처리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라며 “오히려 법안의 실효성을 부여하려면 ‘해야 한다’고 명시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했다. 더구나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논의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법안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여전히 격앙된 분위기다. 다른 직장인 C 씨는 “실효성도 없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국가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법안이다. 국가가 해준 것도 없는데 기업이 헌혈을 이유로 유급휴가를 줄 이유는 없다. 세금으로 헌혈 유급 휴가 비용을 지원하지도 않고 법안을 시행하는 것은 국회 특유의 ‘간보기’이자 책임 회피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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