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돌봄(spiritual care)은 건강과 영성의 통합적 관계에 대한 성찰로 태어난 개념이자 실천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전인적 돌봄을 지향한다. 인간이 전인적 존재라는 것은 육체적 한계성을 지님과 동시에 또한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영적 차원을 통해 본질적인 초월적 의미를 추구하며 사는 존재인 것이다. 삶의 실패와 병고로 인해 이 세상에서 그동안 추구해온 가치들이 부질없이 무너져나가는 체험을 할 때, 인간은 궁극적인 초월적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영적 차원의 깨어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초월적 체험에 의해서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영적 인간은 과거의 아픈 기억(내적 상처), 병고로 인한 현재의 절망과 한계, 그리고 미래적 허상(虛像)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true self)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나아간다. 인간(human being)은 지금 고정되어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되어가는 인간’(human becoming)이다. 현재 병의 고통 속에 있는 자기 모습과 한계를 직시하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존재성이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과 근원적 형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것은 영혼과 육체로 구분은 가능하지만 분리할 수 없이 단일한 통합적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이며 거룩한 존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인간은 그 초월적 존재성과 통교함으로써 현재적 한계를 뛰어넘어 참된 자기의 모습을 찾아간다.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의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는 서구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프레스코 천장 벽화가 있다. 이는 구약 성경 창세기의 1-1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잘 표현한다. 그 연속적인 아홉 개의 주제화 중 네 번째는 하느님 창조 사업의 절정으로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사람(아담)의 창조’를 묘사한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숨결을 부여받는 순간을 ‘구강 대 구강’(mouth to mouth) 호흡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손가락을 인간의 손가락에 마주 닿게 하려고 다가오시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창조주 하느님의 손길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적 손길’(spiritual touch)을 의미한다. 바로 이 손길을 통하여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자각하게 된다. 인간의 영적 차원이란, 이처럼 인간에게 다가오는 거룩한 실재, 초월적 실재와의 통교 접점을 의미한다. 거룩한 초월적 실재의 손길, 바로 그 통교의 손길은 잠든 인간을 일깨워 영적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개입의 손길이다.

영적 존재로의 깨어남이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성을 체험함을 의미한다. 지상적 존재이며 또한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삶의 한계 상황에서의 체험과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이 동시에 교차되며 이루어진다. 사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의 한계 체험을 하게 된다. 사업의 실패, 시험의 낙방, 병의 고통, 인간관계의 갈등... 그런데 매우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찾아오는 이러한 고통과 한계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미소하고 유한(有限)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한계 체험은 곧 의미 체험을 위한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병고로 인해 무력해진 한계 상황의 체험을 통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1905-1997) 박사는 이에 관해 웅변적인 증언을 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내와 부모와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Auschwitz)와 다하우(Dachau) 등지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3년의 시간(1942-1945)을 보내게 된다. 프랭클 박사는 이 기간 동안의 절망스러운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정신요법을 창안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통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체험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는 ‘의미’(意味)에 대하여 생생하게 증언한다.

강제수용소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죽어갔다. 전 재산을 금괴로 바꾸어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 숨겨둔 부자들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다 죽어갔다. 인생의 절박하고 결정적인 순간에서, 재물의 힘만으로는 결코 인간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이렇듯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생존하게끔 만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다. 프랭클 박사를 버틸 수 있게 하고 생존하게끔 이끈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수용소의 어려운 고비들을 헤쳐 나간다. 이처럼 발견된 ‘삶의 의미’는 한 인간의 존재에 존엄성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근원적 힘으로 전환된다.

프랭클 박사의 증언은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살게 하는 초월적 힘이 바로 사랑의 의미 체험에서 솟아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를 죽음의 상황에서조차 살아남게 하는 신비로운 구원의 힘은 바로 이러한 초월적 의미 체험, 즉 사랑과 자비의 체험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다. 영적 돌봄이 지향하는 것은 이렇듯 인간의 한계 상황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근원적이며 초월적인 의미 체험이다. 지금 COVID-19로 인해, 삶의 여러 제약과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 이 시간 속에, 어쩌면 내 삶의 다른 한편에서는 영적 깨어남과 초월을 위한 하나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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