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I 최선재 (remember2413@pharmnews.com)

▲ 부암동 골목길

하늘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하늘 사이로 거미줄처럼 전깃줄이 엮여있고 전봇대가 우리 시야를 가로막는다. 전봇대 너머에 가끔 나무숲이 보이지만 사람이 만든 막대기와 자연이 창조한 나무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쓸쓸함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자연을 마주한다. 하늘과 나무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 산과 바다를 찾는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가끔 ‘이렇게 하늘이 넓었나’, ‘이렇게 구름이 가까웠나’하며 경탄을 쏟아낸다. 그곳이 빌딩숲도, 전봇대의 끝없는 행렬도, 자동차가 내뿜는 고약한 냄새도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은 힘을 들여야 한다. 촘촘한 계획을 짜야하고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때에 맞춰 휴가를 내거나 달력의 빨간날을 세고 또 세어보아야 한다. 마치 기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분출하듯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리는 것이다. 온전한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희생이 필요하달까. 여행의 허들을 뛰어넘어 자연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어찌보면 인간사의 비애다. 하지만 벚꽃 시즌은 다르다.

4월은 꽃이 우리네 비극적인 일상을 뚫고 우리 코앞으로 나오는 유일한 시기다. 흔들리는 꽃들이 전봇대와 빌딩 숲 사이로 뻗어 나와 가슴을 녹이는 약 2주간의 시간이다. 벚꽃 시즌에는 힘을 들여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아도 된다. 만발한 벚꽃은 거미줄과 전깃줄 행렬을 멈추게 만든다. 봄의 벚꽃이 쉽고 편해서 아름답다. 복잡하게 어려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 자연이 내린 선물이자 기적이다.

 

그렇다면 벚꽃을 만나기 위해 어디로 향해야 할까. ‘종로 부암동’이 제격이다. 부암동은 시와 산과 사랑과 벚꽃이 있는 곳이다. 인왕산 자락에 있어 숲의 냄새가 가득하다. 윤동주의 흔적들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골목길 곳곳에서 개나리와 벚꽃이 손짓하는 장소다. 무엇보다도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어 편하다. 버스 택시 지하철 전부 상관없다. 내비게이션에 ‘부암동 주민센터’만 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주말을 피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여전한 지금, 주말의 벚꽃놀이는 불안할 수 있다. 오히려 평일 오후 시간대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직장인이라면 연차를 써야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날짜를 맞추어 연차를 쓰면, 평일 오후에 인왕산 자락길에 도달할 수 있다. ‘벚꽃 세례’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과감하게 연차를 쓰는 것도 추천하다.

그렇다면 음식은 어떤걸 먹어야 할까. 아델라베일리는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에 있는 벚꽃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네이버를 통해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점도 팁이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산과 산 사이를 수놓는 벚꽃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구경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식당 간격도 길어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어느 정도 사수할 수 있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 부암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식사를 마친 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인왕산 자락길을 걸으면 벚꽃길이 나온다. 필자는 사랑하는 이와 이곳을 걸으면서 장범준의 ‘벚꽃엔딩’의 가사가 생각났다.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맘에 들려 오는 자작 노래 어떤가요. 몰랐던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진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사랑하는 그대와 단둘이 손잡을 수 있는 것은 ‘기적’이다. 두 사람이 1년에 단 2주뿐인 벚꽃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것도 신이 주신 선물이다.

여름에 만나 가을에 헤어지거나 가을에 만나 겨울에 인연이 끝나는 이들에게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시기가 1년에 단 한 번 뿐인 ‘벚꽃시즌’이기 때문이다.

인왕산 자락의 벚꽃은 축복과 기적을 선사한 연인에게 고맙고 감사한 애틋함을 떠올릴 만큼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그렇다면 카페는 어디를 가야할까. 카페도 벚꽃 중심으로 선택해야 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배경인 산모퉁이는 산 중턱에서 서울 시내와 벚꽃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산 뒤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일몰 시간이 되면 연분홍 노을이 녹아있는 산자락을 연출한다.

커플들이여, 산모퉁이의 야외테이블에서 일몰과 쏟아지는 벚꽃을 충분히 누리길 바란다. 벚꽃을 누리고 부암동에 도착했다면, 저녁식사는 ‘닭’을 먹는 것이 좋다. 계열사를 강력 추천한다. 부암동에 있는 치킨집인 계열사의 후라이드 치킨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바싹한 식감이 일품인 계열사 치킨은 부암동의 빠질 수 없는 명물이다. 물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위협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갈 가치가 있는 맛집이다. 영화 ‘극한 직업’에 나오는 왕갈비치킨보다 맛있다고 자부한다.

연인들이여,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은가, 전깃줄과 전봇 대가 난무하는 빌딩숲에 지쳐있는가, 비극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약 2주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2주 남짓한 시간에 만난 벚꽃이 서로의 마음을 한껏 녹이면서 사랑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날 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암동에 가서 맛집을 찾고 벚꽃 안에서 사랑을 속삭이면 그대들은 ‘완벽한’ 하루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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