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김응민 (emkim8837@healingnlife.com)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메뉴가 있었다. 바로 ‘꽃게 찌개’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국물에 갖은 양념과 야채, 그리고 꽃게를 넣고 푹 끓여낸 찌개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꽃게 찌개만큼 ‘대게찜’도 좋아하게 됐다.

특히 산지에서 바로 쪄 먹는 신선한 게찜은 비린 맛이 하나도 없고 짜지 않아서, 비싸지만 않으면 일주일에도 몇 번씩이나 먹고 싶은 메뉴다. 그런데 대게만큼이나 맛있으면서 가격 부담은 적은 대체재가 있었으니, 바로 ‘홍게’다. 비록 수율은 조금 부족하지만, 대게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그 맛과 풍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특히나 요즘은 홍게가 제철이라 맛도 좋고 살도 꽉 차 있다.

때문에 이번 맛집 메뉴는 ‘홍게’로 정했다. 마침 아내와 함께 가는 여행지를 속초로 정했고, 그곳에 거주하는 친구가 있어 갈 만한 음식점을 추천받았다. 현지인이 찾아갈 정도로 맛있는, 이른바 ‘믿먹(믿고 먹는)’ 맛집이었다.

무려 스타벅스 커피 2잔을 바치며 알아낸 맛집은 속초의 작은 항구, 장사항 근처에 있었다.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땐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이어서 가게 주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을씨년스럽기 까지 했다.

하지만 가게 입구에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입구 양쪽으로 거대한 수조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대게와 홍게 그리고 킹크랩 수십 마리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신선했고 수조 역시 이물질 없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홍게 2kg을 주문하자, 주인이 직접 눈앞에서 수조에 있는 홍게를 꺼내 확인시켜 주고 곧바로 찜기에 넣었다. 2층에 올라가자 번잡했던 1층과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가게 조명부터 벽면까지 인테리어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니 오징어순대와 김치전, 구운 가리비와 같은 밑반찬들이 나왔다. 이어서 멍게전복회를 비롯한 신선한 회와 초밥이 멋들어진 접시에 담겨 나왔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물회도 있었다. 밑반찬만으로 배가 찰 지경이었다.

이윽고 오늘의 메인 요리인 홍게찜이 나왔다. 몸통과 다리가 먹기 좋게 손질이 돼 있어 가위로 힘들게 자르거나 다른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또한 갓 잡은 홍게라서 그런지 내장을 숟가락으로 크게 떠먹어도 전혀 비리지 않았다. 오동통한 다리 살을 잘빼서 게장에 찍어 먹으면 살의 단맛과 내장의 녹진함이 함께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그렇게 정신없이 게를 다 먹으니, 게딱지에 남아 있는 내장으로 볶음밥과 홍게 라면을 끓여서 내어 주는 것이 아닌가. 이미 배는 부를대로 불렀지만, 시원한 국물을 한 숟갈 먹는 순간 거짓말처럼 음식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자 마지막으로 정갈한 잔에 새콤 달콤한 매실차 한 잔이 나왔다. 차를 마시며 사장님께 맛의 ‘비 결’을 묻자, 가게 구조상 오래된 게가 있을 수 없어 늘 신선한 게로 대접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답했다.

사장님은 “남편이 게 유통과정을 담당하는 중도매인 일을 하고 있다”며 “때문에 늘 신선한 게로만 수조를 채울 수밖에 없다. 구조상 묵힌 게가 있을 수 없고, 회 또한 당일 소진으로 단 한 점도 재사용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게를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해안가 주변으로 있는 식당들 대부분이 ‘게’를 판매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묻지 않았다면 결코 이 중에서 ‘명성 게찜’이라는 옥석을 가려내지 못했으리라. 음식점을 추천받으며 바쳤던 커피 2잔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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