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허용한 전화 처방 등 비대면 진료를 확대할 의지를 밝힌 가운데 제약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원격의료’와 ‘성분명 처방’이 함께 도입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업계의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전화상담 형태의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코로나19의 의료기관 내 확산 방지를 위해 전화로 의사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반복적인 약제 처방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전화 진료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 인근 약국에서 약을 받기 시작한 계기다.

당시 의협은 대면 진료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강력 반발했지만 전화상담 및 처방건수는 7주 만에 10만 건을 돌파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에 의하면 2월 24일부터 4월 12일까지 총 3072개 의료기관에서 10만3998건의 전화 상담·처방이 이뤄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대본이 전화상담 건수 통계가 전해진 순간 상당수의 업계 관계자들이 ‘성분명 처방’이란 키워드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전화상담 건수 증가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며 “대통령이 비대면 산업 육성 계획까지 발표한 이후 통계가 나왔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정부가 원격의료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수면 아래로 잠잠해진 ‘성분명 처방’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허무맹란한 이야기가 아니다”며 “예를들어, 오리지널 처방을 고집하는 의사가 화이자의 고혈압약 치료제인 노바스크(암로디핀베실산염)를 처방했는데 환자 거주지 인근 약국엔 한미약품의 아모디핀(성분명: 캄실산 암로디핀)밖에 없을 수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확대할 경우 성분명 제도를 통한 약사의 처방권 확대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성분명 처방’ 제도는 의사가 약의 이름을 지정하지 특정하지 않고 성분명으로만 처방하는 제도다. 약국에서 약사가 그 성분의 약들 중 하나를 선택해 조제할 수 있는 것.

실제로 2014년 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했을 당시 대한약사회는 시범사업에 조제약 택배배송이 아닌 ‘성분명처방’과 ‘처방전리필제도’할 것을 촉구했다. 처방약 택배배송이 변질, 오염 등으로 많은 환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격 의료’와 ‘성분명 처방’의 양립이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란 뜻이다.

업계에서는 ‘원격의료’와 ‘성분명처방’이 도입될 경우 영업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영업의 타깃이 의사에서 약사로 변경된다는 뜻이다. 의사의 처방권이 약사로 넘어가면서 영업의 판도가 바뀌는 것”이라며 “프로모션의 대상이 기존 의사에서 약사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약사들을 상대로 학회나 심포지엄을 열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회의론’도 있다. 코로나19 종식이후 원격의료 논의가 잦아들면서 ‘성분명 처방’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중견제약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여전히 의사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전문약과 일반약의 비율은 보통 4대1이다. 80%의 매출이 의사의 처방권에서 나온다”며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하는 이상 성분명 처방이 도입된다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약사 입장에서는 의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성분명 처방제도를 대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대비할 필요성은 못 느끼고, 아이디어가 있어도 투자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의협이 반대하는 이상 정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국면이 끝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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