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후 의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에 큰 공헌을 했지만,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 영혼까지 치유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의학적 차원의 접근과 더불어 영적 차원의 돌봄이 함께 이루어질 때, 환자가 질병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마침내 그 전인적 치유와 회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도울 수 있다는 성찰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근래에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인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가별로 상황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고, 이 같은 상황은 한동안 지속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팜뉴스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이 겪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헬스케어영성(원제 : Oxford textbook of Spirituality in Healthcare)의 공동역자인 현 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교황청 국제신학위원인 박준양 신부님의 원고를 시리즈로 게재한다. 

아무쪼록 신부님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힘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박준양 신부(現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인간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지구적 위기 상황을 맞이하며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과 성찰이 다시금 광범위하게 제기된다. 이제 인간에 대한 성찰은 전인적(全人的)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어느 한 특정 측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을 보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인적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구분(distinction)은 가능하지만 결코 분리(separation)할 수 없는 전인적 인간의 다섯 가지 차원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신체적(physical) 차원, 논리-지성적(logico-intellectual) 차원, 심리-정서적(psycho-emotional) 차원, 사회-경제적(socio-economic) 차원, 영적인(spiritual) 차원의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가지 차원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큰 질병이 생겨 신체적 차원의 부정적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곧 마음에도 영향을 미쳐 심리-정서적 차원의 부정적 문제를 동반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인관계가 차단되고 경제적 문제가 생기는 등 사회-경제적 차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자신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보다 근원적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즉, 영적 차원의 깨어남이 이루어지고 영적 감수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어느 환자의 한 인격 안에서 이런 역동적 상호관계가 고찰된다.

이러한 ‘연쇄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linkage)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현재 COVID-19의 문제로 인해 겪게 되는 지구적 현상에서도 이러한 역동적 상호관계가 발견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과 감염이라는 보건의료 차원의 문제가 소위 ‘코로나 블루’(corona blue)와도 같은 집단적인 심리-정서적 차원의 문제를 일으키고 또 사회-경제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연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차원의 노력과 기도가 전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지난 3월 27일, 비 내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위기 앞의 인류를 위해 홀로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종교를 넘어서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오늘날 전인(全人)을 말한다는 것은 이 다섯 가지 차원 중 어느 한 가지도 배제하거나 경시하지 않고 전체를 모두 포괄하는 통찰을 의미한다. 이들을 모두 포함하여 다루면서도 전체적인 균형(balance)과 조화(harmony)를 이룰 때, 우리는 바로 이것을 인간에 대한 전인적 성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이는 마치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자 하는 대상의 전체적 외곽을 카메라 렌즈 안에 담으면서도 내적인 구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사진에는 반드시 초점(focus)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성찰에 있어서도 전체적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동시에, 하나의 초점이 필요하게 된다. 환자에 대한 의학적 치료는 당연히 인간의 신체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측면들에 대한 배려를 배제시키지 않아야 한다.

특히 질병이 만성적이 되어가거나 의학적 치료가 점차 어려워질 때, 혹은 끝내 회복이 어려워지는 단계에 접어들 때, 우리는 신체적 차원에서의 치료를 지속하면서도 환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초점이 필요한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환자에 대한 영적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접근에서의 궁극적 관심은 치유(healing)이기에, 이제 치료(cure)와 더불어 돌봄(care)에 주된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일종의 이중 초점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심신통합적 혹은 전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접근과 배려를 가리켜, 우리는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이라 부르게 된다. 특히, 완화 의료(palliative care)의 대상이 되거나 호스피스(Hospice) 단계의 환자들에게는 이러한 영적 돌봄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영적 돌봄은 인간의 영적 차원에 궁극적 초점을 맞추면서도 다른 차원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환자라는 한 인격체의 전체적 균형과 조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동시에, 신체적 차원에서의 치료뿐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의 돌봄에도 초점을 맞추게 되는 이중적 초점의 형성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전인적 돌봄’(holistic care)을 지향하는 것이 영적 돌봄의 진정한 요체(要諦)이다.

신체적,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 새로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인간의 영적 차원이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성’(religiousness)이란 개념이 종교의 예식(ritual)적 측면과 사회-제도적 측면까지도 포괄하여 다의적(多義的)이고 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적 돌봄에서는 주로 인격적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초월적 실재에 대한 탐구와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영적 차원을 이해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삶의 현상적 차원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인간 고통에 대한 해석과 삶의 궁극적 의미 추구 등이야말로 인간의 대표적인 영적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COVID-19로 인해 일반적 사회 활동은 물론이고 예식적, 조직적 차원의 종교 활동조차도 제약받고 있는 상태에서, 인간의 이러한 영적 추구는 앞으로 더욱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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