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 마곡동 코오롱생명과학 본사
사진=서울 마곡동 코오롱생명과학 본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에 대한 임상 3상을 재개하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집단소송에 참여한 국내 환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오롱 측이 향후 소송에서 임상 재개 사실을 활용할 경우 환자들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임상 재개를 위한 ‘안전성’과 의약품 허가를 위한 ‘안전성’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환자 집단 소송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인보사가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분위기가 엿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에서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FDA가 인보사에 대한 임상 3상 보류(Clinical Hold)를 해제하고 환자 투약을 재개하는 결정을 내린 것. 업계에서 식약처가 주성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한 코로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가 기사회생하는 것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인보사 집단소송에 참여한 환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지난해 5월 ‘인보사 사태’가 터졌을 당시 법무법인 오킴스는 인보사 투여환자 244명을 대리해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참여 환자수가 점점 늘면서 약 1000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집단 소송에 참여 중이다. 미국발 ‘인보사 임상재개’ 소식이 전해진 순간 환자들이 모인 채팅방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까닭이다.

환자 A 씨는 “혹시 국내 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며 “인보사 주사를 양쪽 무릎에 1400만원이나 주고 맞았는데 여전히 아프고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바뀐 세포 때문에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임상 재개가 환자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환자들의 우려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FDA는 안전성 우려만 없으면 임상시험을 대부분 승인해주는 기관이다”며 “미국은 임상시험을 통해 새로운 신약이 발굴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광범위하게 임상시험을 허용한다. 다만, 의약품 허가와 임상 재개의 ‘안전성’ 요건을 동일시하는 착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임상 재개로 인보사의 안전성이 최종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최종 허가를 위해서는 FDA가 5년치 안전성 데이터를 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최종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희미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집단 소송의 핵심은 세포가 뒤바뀐 것이다. 예를들어 환자들이 아스피린인줄 알고 먹었는데 타이레놀이었던 셈이다. 그 자체가 문제다. 환자들의 소송에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미미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환자 집단소송의 주된 근거는 ‘약사법 위반’이다. 약사법 제31조, 제62조, 제94조에 의하면 의약품 제조·판매사는 허가 또는 신고된 의약품으로서 그 성분 또는 분량이 허가된 내용과 다른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목적으로 제조해서는 안 된다.

법조계에서 ‘미국발 임상재개 소식’이 국내 소송에 미칠 영향이 상당히 낮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까닭이다. 인보사의 허가 당시 기재된 세포와 다른 세포가 사용됐다는 ‘FACT’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조민지 변호사는 “인보사의 주성분 중 2액인 형진절환세포(TC)가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293유래세포)인 것이 핵심”이라며 “FDA가 임상을 재개했다고 해서 인보사를 이루는 신장유래세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안전성을 논하기 이전에 애초에 다른 성분이 의약품에 혼입됐다는 점에서 환자 측의 근본적인 법리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집단소송을 이끌고 있는 엄태섭 변호사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엄태섭 변호사는 “미국 FDA에서 임상을 승인한 것은 최종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의약품을 판매해도 된다고 허가를 낸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임상을 승인해준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식약처의 허가 취소 자체는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FDA가 인보사를 최종 허가할 경우 집단소송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인보사가 미국에서 최종 시판된 경우 코오롱 측이 국내 소송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강하게 펼 수 있다”며 “인보사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느냐는 방어 논리다. 환자들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해배상을 다소 적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의견은 다르다. 앞서의 전문의는 “연골 세포였는데 알고보니 신장유래세포였다”며 “식약처가 인보사에 대한 허가를 내줬을 때 코오롱이 제출한 근거자료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설사 미국이 인보사를 시판하더라도 제약사는 의약품의 약물 정보를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당초 정보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식약처의 허가 취소는 정당하고 코오롱의 약사법 위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환자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해 700만원짜리 주사를 맞은 것이 아니다. 판매중인 유전자 치료제를 값비싼 돈을 주고 맞았다. 주사 투여 비용은 물론 정신적 손해배상액 전부를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소송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임상 재개 통보를 받기 전부터 인보사가 안전하다는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입장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FDA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더욱 안전하다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인보사를 향해 일었던 숱한 의문점들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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