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전문위원(법무법인 광장)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르면 ▲평생 건강을 뒷받침하는 보장성 강화 ▲의료 질과 환자 중심의 보상 강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제고 ▲건강보험의 신뢰 확보 및 미래 대비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46개의 세부과제가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보장성 강화에 관한 부분은 건강보험 재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재정 확보와 관리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은 분야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적정 관리를 통해 재정 건전화를 추구하는 한편,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으로 사회적 요구가 높은 중증 및 희귀질환에 대한 의약품의 보장성 강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제시한 것이다. 산학을 두루 거치며 보험약가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법무법인(유) 광장의 김성주 전문위원(응용통계학 박사)을 만나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들어봤다.

 

≫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종합계획 시행안의 가장 큰 한계점을 꼽자면?

정부가 약가 규제로 절감한 재정을 통해 신약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제시한 방안은 포괄적인 반면, 약제비를 절감하는 방법은 매우 구체적이다. 즉, 제약업계 입장에서 보면, 혜택에 대한 내용은 큰 방향성만 제시돼 있고 규제에 대한 부분은 매우 세부적이라는 뜻이다.

기존의 약제비를 절감하는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외국 약가를 참조해 약가를 인하하거나 의약품 사후재평가를 실시하는 것 등이 있다. 항암제의 경우, 실제 임상에서 나오는 리얼월드데이터(RWD)를 분석해 약가를 평가하겠다고 한다.

이렇듯 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약가를 줄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절감된 재정을 통해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질환의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방향성만 제시돼 있지,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이는 지난 2012년에 약가 일괄인하 시행 당시에도 벌어진 일이다. 당시 보건당국은 약가 인하를 하는 것에 대한 트레이드 오프로 혁신적인 약제의 가치는 인정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ICER 상향 조정, 위험분담제 및 경제성 평가 면제와 같은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그로부터 2~3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뤄졌다.

약제를 절감하는 방안과 우대하는 방안을 동시에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인 것이다. 제도 개선을 구체화하는 시기까지 발생하는 피해를 제약사들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때문에 제약업계는 이번에도 과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약가 규제 방안은 타당성이 있는가.

시행안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재정 건전화를 위한 방안으로 약제비 적정 관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일괄인하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에는 그 비율이 23%까지 낮아졌기 때문에 이미 적정 수준의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제비 지출이 높다는 지속적인 주장은 우리나라의 의료비 대비 약제비를 비교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의료비 비중이 해외 선진국 대비 절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약제비 비중이 높아 보이는 것이다.

즉, 관점에 따라 약제비 지출의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종합관리 계획에는 약제비 관리가 구체적인 반면, 사용량 관리는 그렇지 않다.

약제비는 약가와 사용량으로 구성된다. 약가 수준은 직‧간접적으로 타 선진국 대비 높지 않다는 근거는 이미 많이 나왔다. 때문에 지금은 약제비보다는 사용량 조정을 통해 약제비를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심평원의 NPS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한 환자가 1년간 200회 병‧의원을 방문하고 총 처방건수가 1,000건이 넘는 사례가 있다. 대부분 위장약, 소화제, 소염진통제와 같이 경증 질환 치료제 처방이었다. 이와 같은 사례를 볼 때, 일부 경증 약물의 경우, 올바른 사용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OECD 사무국에서도 의약품의 과다사용과 잘못된 사용은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의약품 처방의 질을 향상시키고 다품목 처방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국제적 정책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

≫ 중증 및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중증 및 희귀질환 의약품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올라가므로 당연히 실행돼야 한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의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건강보험 평가 체계로는 도입이 가능할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및 세포 치료제는 기존에 치료제가 없던 희귀유전질환에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다.

하지만 기전상 1회 투여하는 경우가 많아 단순하게 가격만 바라본다면 기존의 상식과는 벗어난 수준인 경우가 많다. 최근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유전자 치료제만 200개가 넘고 미국 FDA는 2025년까지 매년 10~25개의 유전자 치료제가 허가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개발 동향에 따라 외국에서는 약제비 지불방법에 대한 제도 개선을 논의 중에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그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보험 평가 체계에 대해 정부가 계획한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질환 치료제의 보장성 강화가 가능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환자 치료 접근성에 대한 부분도 언급하고 싶다.

최근 몇 년간 신약의 등재율, 특히 항암제의 등재율은 올라가고 등재기간도 줄어들어 환자의 접근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등재율과 기간만으로는 환자 치료 접근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일부 치료제의 경우, 안전성을 개선한 약제가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동반 질환이 심각하게 악화돼야만 교체투여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 국내 제약업계가 발전하기 위해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강보험종합계획은 지출 구조 개선을 통해 중증 및 희귀질환 의약품 보장성 강화에 활용한다고 돼 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제안하는 트레이드 오프조차 미비한 점이 많고, 제약업계 전체가 아닌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봤을 땐 결코 트레이드 오프가 아닐 수도 있다.

신약과 특허만료 의약품 모두를 취급하는 제약사에겐 정부의 계획안이 트레이드 오프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은 약가 규제에 대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제약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업계 전체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결코 규제해야 할 분야가 아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제약 및 의료기기 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대량으로 양산화하는데 성공하는 한편, 정부와 다방면에 걸친 협력을 통해 사태 안정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수없이 말한 정부의 의지와, 현재 상황에서 제약업계가 쏟는 노력과 공로를 감안했을 때, 제약산업은 더 이상 규제가 아닌 투자를 해야 하는 영역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경력

김성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연구기관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비중으로 보면 제약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 2004년에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협력센터에서 통계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다음 해에는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팀의 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했고, 2007년에 한국노바티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제약사에서 10년간 보험약가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 기간 동안 희귀질환과 만성질환 및 항암제 관련 다양한 신약을 보험 급여에 등재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약제전담팀의 일원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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