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세상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의 여파가 몰아치고 있다. 플레이어가 전염병이 돼 전 세계 인간들을 멸종시키는 모바일게임이 다운로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가 하면, 과거 온라인게임에서 발생했던 거대 전염병 사태는 130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이 나왔을 정도다.

지난 18일, 국내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추가 확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동 2차 권고안을 통해 잠재적인 2차 유행 가능성을 언급하며, 추가적인 방역 대책을 필요성을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걱정과 우려가 게임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는 것.

지난 2012년 영국 게임사가 개발한 모바일게임 ‘전염병 주식회사’는 ‘판데믹’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판데믹이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최근 국내를 비롯한 중국‧미국‧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앱스토어 유료게임 부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1. 18일 기준, 국내 앱스토어 유료게임 순위]
[사진-1. 18일 기준, 국내 앱스토어 유료게임 순위]

‘전염병 주식회사(Plague Inc)’에서 플레이어는 질병이 된다. 게임의 최종 목표는 전세계 인간을 감염시켜 사멸시키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성되는 DNA 포인트를 이용해 질병을 진화시킴으로써 최대한 많은 이를 감염시켜야 하고 특히 전염성과 치사율, 심각성의 세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치사율이 너무 높다면 전염병이 퍼지기도 전에 감염자가 죽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또 전염성에만 신경 쓰다 보면 질병의 확산속도는 빠르지만 정작 사망자가 적게 나오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심각성은 인류가 질병의 존재를 눈치채는 지표다. 게임 내에서 심각성이 높아지게 되면 사람들이 손을 자주 씻고 각국 정부와 의료진들이 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종래에는 국경 폐쇄 단계까지 등장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전염병을 확산시킬 국가를 선택할 때 이 게임의 튜토리얼에서도 ‘중국’을 추천한다는 것.

중국은 세계적인 인구 대국으로 대도시의 경우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주변 인접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더불어 유동인구 및 물동량도 많다. 이에 더해 야생 동물 섭식에 거부감이 적은 중국 식문화까지 합쳐지면, 전염병이 퍼지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이자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는 우한은 인구 1,100만이 넘는 중부지역의 대도시다. 또한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징광선강 고속철도(베이징~홍콩)와 횡단하는 후한룽 고속철도(상하이~청두)의 교차로로 유명하다.

육로 외에도 장강(長江)과 한수(漢水)가 합류하는 지점 역시 우한이며, 우한 텐허 공항은 중국 국내선 항로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이번 바이러스의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화난수산물도매시장’은 수산물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야생동물이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 개발자 제임스 본에 따르면 이 게임은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자문을 얻어 만들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해당 게임을 ‘지능성 게임’으로 분류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해외에서는 전염병 전파 과정과 보건 위생을 익힐 수 있는 교육적인 시뮬레이터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2. 전염병 주식회사 게임 화면]
[사진-2. 전염병 주식회사 게임 화면]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 내에서 발생한 전염병을 통해 감염자들이 보이는 행동방식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05년,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버그로 인해 거대 전염병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업데이트된 던전의 보스인 ‘학카르’는 ‘오염된 피’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플레이어들이 이 기술에 걸리면 지속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주변 플레이어들에게 오염된 피가 전염됐다.

오염된 피는 플레이어가 던전을 벗어나게 되면 자연히 사라졌지만, 플레이어의 소환수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버그가 있었던 것. 이 사실을 모른 채 대도시로 돌아간 플레이어는 그곳에서 자신의 소환수를 다시 소환했다. 그러자 소환수에 있던 바이러스(오염된 피)가 순식간에 대도시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 퍼져나갔다.

게임 시스템상 플레이어들은 죽고 난 후에 부활하면 바이러스가 사라졌지만, 문제는 대도시에 있는 NPC였다.

NPC(Non-Player Character)란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설정상 NPC들의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회복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죽지 않았고, 대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플레이어들을 계속해서 감염시키는 ‘슈퍼전파자’가 됐다.

주목할 점은 ▲바이러스(오염된 피)가 게임 내에서 퍼지게 된 경로와 ▲대도시가 바이러스로 오염된 이후 나타난 플레이어들의 양상을 연구한 논문이 2007년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게재됐다는 것.

[표-1. 전염병 확산경로]
[표-1. 전염병 확산경로]

연구진은 우선 도표와 같이 전염 경로를 학카르(바이러스 숙주) → 플레이어‧소환수(1차 전염자) → 대도시의 NPC(보균자) → 일반 플레이어‧소환수 및 다른 마을의 NPC(2차 전염자)로 정리했다.

던전 내에서는 바이러스가 게임사에 의한 ‘의도된 확산(intended spread)’을 통해 발생했지만, 던전을 벗어나면서부터 ‘의도치 않은 확산(unintended spread)’이 나타났다. 이후에는 체력이 적은 플레이어와 소환수(3차 감염자‧현실의 어린아이와 노인)에게까지 감염이 확산됐다.

또한 연구진은 대도시로 전염병이 확산된 이후에 플레이어들이 취한 행동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우선 치유 기술을 가진 일부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감염된 플레이어들의 생명력을 회복하며 치료를 했다. 또한 몇몇 플레이어들은 감염되지 않은 이들을 안전지역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일부는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대도시를 탈출하거나 감염된 플레이어들을 대도시 내에서 격리시키는 행동을 보였다. 한편 악질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고의로 인근 마을을 습격해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거나 가짜 약을 팔아 돈을 챙기는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실제 현실에서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일어날법한 현상들이 게임 속에서도 그대로 관찰된 것이다.

앞서의 연구진은 “온라인 게임은 실제 인간 행동을 연구할 때 매력적인 풀(poll)을 갖춘 실험실이 될 수 있다”며 “동물 연구나 시뮬레이션 연구보다 실제 상황과 훨씬 유사한 점이 많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게임사의 서버 초기화로 일단락됐으나 당시 BBC 뉴스나 각종 인터넷 포럼 등에서 화제가 됐다. 미 CDC는 전염병 연구에 참고자료로 활용할 목적으로 당시의 통계 자료를 게임사에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가상 세계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게임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단순히 게임 내에서의 현상만으론 실제 전염병의 확산을 정확히 분석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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