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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팩트’ 그 자체다
[기자수첩]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팩트’ 그 자체다
  • 최선재 기자
  • 승인 2020.01.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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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당국 펜벤다졸 이슈 대응 과정,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 ‘미흡’
[팜뉴스] 최선재 기자
[팜뉴스] 최선재 기자

“임동규를 트레이드하겠습니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남궁민) 단장이 내놓은 취임일성이다. 백승수 단장은 드림즈 구단 내 유니폼 판매량 70%를 차지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홈런 40개를 때리는 ‘거포’인 임동규(조한선)를 트레이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팬들의 눈물마저 메마른 꼴찌팀의 유일한 희망을 내보내겠다는 백승수 단장을 향해 구단 프런트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배경이다.

하지만 백승수 단장은 PPT 발표를 통해 회의실에 모인 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임동규는 결승타가 적어 승부처의 영웅이 아닌 점, 순위 경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름에 꼴찌가 확정된 이후 홈런을 생산한 점, 홈구장 펜스를 연장하면 서른 개의 홈런을 치는 중장거리형 타자로 전락하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 즉, 명확한 근거들을 열거한 것. 결국 구단직원들은 백승수 단장의 탄탄한 논리에 설득됐고 임동규는 팀을 떠났다.

이렇듯, 구체적인 데이터에 기초한 ‘FACT(팩트)’는 설득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정부는 ‘구충제 항암 이슈’ 대응 과정에서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과학적인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식약처는 사태 초기, 펜벤다졸이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구충제란 이유로 ‘절대 복용금지’ 입장을 되풀이해왔지만 어떤 연구 논문을 토대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후속 대응도 마찬가지다. 식약처는 펜벤다졸이 사람이 아닌 세포와 동물을 대상의 연구결과만 있다는 이유로 수차례 ‘복용금지’를 권고했다. 항암효과를 위해서는 고용량, 장기간 투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혈액,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도 첨부했지만 결론을 내린 근거로 작용한 연구 논문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의약계 전문가 집단도 다르지 않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도 펜벤다졸에 대해 사람을 대상으로 항암효과에 대한 임상 근거가 부족하단 이유로 ‘복용금지’ 의견을 냈다. 국립암센터도 최근 구충제의 항암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추진했지만, 준비단계에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취소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국립암센터가 한목소리로 구충제에 대해 ‘항암제로서 안전성과 효과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몇 개의 논문을 검토했는지, 누구의 의견을 들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집단과 보건 당국이 그동안 구충제 관련 입장을 밝힌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과학적인 근거가 명시된 ‘연구 논문’의 상세한 자료가 누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펜벤다졸 항암 이슈가 촉발된 초기부터 지금까지, ‘구충제 항암 이슈’에 대한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과정에 보건 당국과 전문가 집단의 ‘말들만’ 얹어지면서 환자들의 불신은 더욱 가중됐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과학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은 결과, 일어난 현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유튜브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환자들은 펜벤다졸 관련 연구 논문의 ‘풀 텍스트’를 공개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방법으로 서로를 향해 ‘구충제 항암효과’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암 환자 유튜버들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셀프임상에 나섰고 영상 검사 결과지 등 각종 지표를 공개 중이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깜깜이’ 대응으로 일관한 사이, 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 수집에 적극적으로 나서온 것이다.

이들이 단순히 ‘무지’하기 때문에 이런 노력들을 하는 것이 아니다. ‘먹지 말라’ 또는 ‘먹으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가 빈약하다고 판단한 탓이다. 실제로 국립암센터는 동물과 관련된 장기 안전성 데이터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2007년 미국실험실동물과학협회에 발표된 ‘쥐에 대한 펜벤다졸 생물학적 효과’에서는 관련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즉 환자들이 접근 가능한 구충제 관련 ‘숨은 연구결과’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설득의 3요소 중 첫 번째는 ‘로고스’다. 로고스는 ‘상대방에게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를 뜻한다. 펜벤다졸 항암 이슈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연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팩트’에 기반한 로고스, 즉 근거를 얼마나 제시했는지를 묻고 싶다. 과거와 달리, 단순히 ‘말’이나 ‘문구’를 가득 담아내는 방식으로 환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환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탄탄한 논리’가 담긴 팩트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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