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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白馬高地 전투 때도 ‘낮잠’ 자는 병사는 있었다
[데스크 칼럼] 白馬高地 전투 때도 ‘낮잠’ 자는 병사는 있었다
  • 이헌구 기자
  • 승인 2020.01.14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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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워 사이, “선택은 기업 몫”

백마고지(白馬高地) 전투는 역대 한국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힌다. 전투 기간 당시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우리 국군 9사단은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1만여 명의 사상자가 속출했고, 우리 군도 34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런 ‘백마고지 전투에서도 낮잠 자는 병사가 있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랬을리는 만무하다. 단지 극한의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속설일 뿐이다.

현재의 제약바이오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해 벽두부터 200여곳 제약사의 4천여개 품목이 약가가 인하되는가 하면, 하반기에는 임상적 유용성이 낮은 약제들을 타깃으로 약가 재평가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2년에 걸쳐 터진 발암물질 사태로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까칠한 대응도 이미 예견된 상태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면 그야말로 백마고지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기회는 찾아왔다.

그동안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워’로서 강점을 보이며 발전한 나라다. 하지만 그 시대도 이미 저물고 있다. 주도권은 진작에 신흥국가들에 넘어간 상태다. 선진국과 같이 정보를 이용한 4차 산업으로 사회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말’은 가야한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동안 ‘행동’은 뒷받침 되지 않았다. 정부가 서비스 산업으로서 의료정보를 다루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신중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며칠 전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제약바이오산업이 치고 나갈 수 있는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노인 인구 증가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의료비의 상승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날 게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2018년 기준 전체 예산의 18.2%가 의료비로 지출됐다. 이는 2050년경 그 비중이 50%로 늘어난다는 전망이 있다. 의료비 지출이 국자 재정의 50%가 넘는다는 의미는 곧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비용을 지금의 1/10로 낮춰야 한다.

정밀의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유전체 정보를 이용해 발병이 나기 전에 관리하는 사전적 치료법이 지금의 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해야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된다. 미 클린턴 대통령이 왜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연구비를 투자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 이유로 정밀의학을 중요시했고, 현 트럼프 대통령은 NIH(미국국립보건원) 원장을 이전 정부 사람인 프랜시스 콜린스를 계속 기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책임이다.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 중에 겪을 수 있는 혼란이 자칫 자신의 책임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얼마 전 ‘적극행정 징계면첵제도’라는 용어를 들은 적이 있다. 공직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 감사원이 2008년 내놓은 대안이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절차 위반, 예산 낭비 등에 대해 공무원의 징계 책임을 감면해주는 제도인 것이다.

이제는 의료정보를 다루는 것에 있어 법률적인 부분이 해소된 만큼 공무원들도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기업들이 나설 타이밍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좀 더 정확하겠다.

지체가 조금만 더 길어진다면 미국의 닥터 왓슨이나 구글과 같은 기업들에게 의료정보를 통한 또 다른 제약바이오 산업의 영역마저 지배당할 것이다.

앞으로 올 큰 변화에 대처해야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제약바이오는 산업적인 기초가 탄탄하지는 않지만 정보를 활용해 치고 나갈 수 있다.

기업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길어야 1~2년이다. 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워 사이에서 선택은 ‘기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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