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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을게 따로 있지, 아이 뇌전증 약을…政, 희귀병 환아 ‘패싱’ 논란
뺏을게 따로 있지, 아이 뇌전증 약을…政, 희귀병 환아 ‘패싱’ 논란
  • 최선재 기자
  • 승인 2020.01.10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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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약센터, “‘에피디올렉스’ 재고 확보할 예산 없다”
하루에도 ‘발작’만 수차례…부모들, “아이들 죽으란 얘긴가”
전문가 “식약처 직무유기”…제 2의 ‘고어사 사태’ 재현 우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최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에 대한 재고 고갈을 예고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조치로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피해가 가중될 것이란 예상이 들리고 있다. 센터 측은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지만 환자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식약처는 묵묵부답이다.

영수(8·가명)는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아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은 소아기에 발생하는 뇌전증 중 가장 심한 형태의 난치성 뇌전증이다. 영수가 2014년 이후 하루에도 10여차례 이상 발작증세 때문에 고개를 ‘툭’하고 바닥에 떨어트리거나 책상에 앉았을 때 머리를 ‘쿵’하고 부딪혔던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은 뇌전증 지속상태”라며 “다른 뇌전증 환자들은 ‘대발작’을 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 그 상태를 한동안 유지한다. 하지만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아는 간질이 온 이후 깨어날 만하면 또 발작한다. 하루종일 사지가 늘어지는 형태로 계속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 영수의 일상을 무너지게 만들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뇌전증 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를 복용한 이후 영수에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영수의 어머니 A 씨는 “아이에게 갑작스레 근육에 힘이 빠지면 쓰러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하지만 에피디올렉스 복용 이후 발작 횟수가 5회 미만으로 줄었고 눈동자의 초점이 선명해졌다”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3월 ‘희귀·난치 질환자 건강 지킴이 사업’의 일환으로 영수와 같은 희귀질환자에게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대마성분 의약품 수입을 허용했다. A 씨 가족이 국내 의료진의 처방전을 받아 희귀약 센터에 신청하면, 1주일 안에 비교적 쉽게 의료인 대마로 분류된 에피디올렉스를 처방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지난 1월 2일 영수 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희귀약 센터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향후 에피디올렉스의 재고 확보가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센터 재고가 소진될 경우, 환자들이 주문을 받아 수입하는 시스템으로 변경돼 약품수령기간이 7일 이내에서 15주 내외로 늘어난다. 개별 수입으로 인한 약가 상승도 피할 수 없다.

A 씨는 “식약처가 어린아이들에게 이럴 수는 없다”며 “하루 이틀 먹는 약도 아니고 2년 이상 복용해야 할 약이다. 개별적으로 신청해서 구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부담이 상당하다. 무엇보다도 재고가 없어 아이가 먹는 약이 끊길 것 같아 걱정이다. 약 공급이 아예 중단될 경우 끔찍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식약처가 허용한 의료용 대마 의약품은 그동안 주로 소아 뇌전증 치료에 사용됐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희귀약센터로부터 받은 ‘의료용 대마 공급현황’에 따르면 대마를 의료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3월 12일부터 10월 1일까지 약 6개월간 총 443건(남성 253건, 여성 190건)이 공급됐다.

환자수는 총 202명(남성 115명, 여성 87명)이었다, 연령별로는 9세 이하가 97건(67%), 10세부터 19세 이하 94건(21.2%)의 비율을 기록하면서 아동‧청소년 사용량이 전체의 88.2%를 차지했다.

특히 승인된 처방 적응증은 지난해 8월 12일 기준 347건 중 294건(84.7%)이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이었다. 에피디올렉스 적응증은 영아기 중증 근간대성 뇌전증인 드라벳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난치성 뇌전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치료제로 사용된 것.

의료계에서 이번 조치가 소아용 인공혈관 수급 중단으로 비롯된 ‘제2의 고어사 사태’를 연상케한다는 비판이 들리고 있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식약처가 희귀질환 환아들과 부모들에게 ‘앞으로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소아 희귀성 질환은 다른 질환과 달리 국가차원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예산편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식약처의 직무유기다. 시급히 예산 편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어사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의 강성석 대표(목사)는 “난치성 뇌전증 아이들은 발작이 심해지면 사망할 수 있다”며 “정부가 아이들이 죽던 말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가 상승 예고는 발작하는 아이에게 항경련제를 빼앗아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조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희귀약 센터 측은 에피디올렉스의 재고 확보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 중이라는 입장이다.

희귀약 센터 관계자는 “희귀질환 환아들의 숫자가 적어도, 아이들의 고통을 나누는 게 이번 정부의 기조인데 그런 부분에서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안타깝다”며 “이미 예산 반영이 끝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식약처와 추가 경정 예산과 예비비를 통한 문제 해결을 논의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팜뉴스 취재진은 지난 8일부터 9일 오전까지 ‘희귀약 센터 예산 부족으로 인한 소아 난치성 뇌전증 환아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식약처 측에 수차례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식약처 마약정책과 측은 “대변인실이 답변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대변인실 측은 “최종 논의 끝에 답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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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2020-01-11 17:20:05
참으로 비인간적이고도 무책임한 집단.
기타 CBD-THC 성분 신경병증치료제인 Sativex 등도 Epidiolex와 함께 하루빨리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전문의라면 누구라도 처방을 발행해서 바로 아무 약국에서나 약을 수령하여 복용할 수 있도록 제도도 고치고 약가 또한 최대한 내려야 한다.
약이 있어도 건강보험적용이 안되고 약가 현실화가 안되면 그림의 떡만 보다 죽어나가는 환자가 하나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