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수도권 인근,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곳에서는 흙에서 쇳가루가 섞여 나오고, 매연이 수시로 코끝을 찌른다. 100개 이상의 공장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물론 주민들은 각종 피부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인천 사월마을’의 이야기다.

팜뉴스 취재진이 사월마을을 방문한 까닭이다. 취재진이 눈으로 확인한 현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보건당국은 최근 주민 건강조사를 통해 ‘거주 부적합’ 판정을 내리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실상을 낱낱이 전한다.

8일 오전 8시 30분경 기자가 인천시 서구 왕길동에 있는 사월마을에 도착했을 당시 공장을 향하는 수많은 출근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은 너도나도 매연을 내뿜었다. 출근 차량의 목적지는 사월마을에 밀집해 있는 공장들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옹기종기 모인 주택들 옆에 상당히 많은 수의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담벼락 하나를 두고 공장과 마주하는 주택도 있었다. 공장들이 ‘이웃사촌’처럼 보이는 주택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공장 병풍’으로 둘러 쳐진 마을이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목재나 철근 등의 자재가 공장 앞마당은 물론 도로 주변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재를 가공하면서 나오는 소음도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아아아앙”이란 굉음과 함께, 덤프트럭들이 비좁은 골목 사이로 쉴 새 없이 지나 다녔다. 덤프트럭이 지나가면 곧이어 매연이 뒤따라왔다. 흙먼지와 매캐한 냄새가 ‘일상’인 마을이었다.

40년 넘게 사월마을에 거주해온 주민 A씨(78)는 “여기는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라며 “주택 바로 옆에 공장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도 공장들이 빈 땅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여기 있는 공장들은 지어진 지 전부 20년이 넘었다”며 “어떤 공장은 작업을 할 때마다 먼지가 수도 없이 생긴다. 대낮에도 하늘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심각하다. 정부가 미세먼지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 마을 문제부터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 조사도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17년 12월부터 2년에 걸쳐 이 마을 52세대 주민 125명을 대상으로 주민건강 영향조사를 진행했다. 주민들이 2017년에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제출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조사에 따르면 사월마을엔 폐기물 처리업체 16개와 철공소 목재 가공업체, 주물업체와 같은 각종 제조업체 122개를 비롯해 총 165개의 사업장이 있다. 거주하는 마을 주민 100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공장 수가 마을 주민의 수보다 더욱 많은 것.

심지어 조사 당시 사월마을 전체 52세대 중 71%에 해당하는 37세대는 거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공장뿐 아니라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사월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계절별로 3일간 측정한 사월마을의 대기 중 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55.5㎍/㎥로 인천시 서구 연희동의 측정 농도(37.1㎍/㎥)보다 1.5배 높았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는 주민 비율은 각각 24.4%와 16.3%로 전국 평균 대비 4.3배, 2.9배를 기록했다.

현실은 ‘숫자’보다 잔혹했다. 사월마을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주변 공장이나 쓰레기 매립지로 힘든 점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을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B씨(80‧여)는 “공장에서 나오는 쇳가루나 먼지 때문에 온몸이 가렵고 피부병까지 생겼다”며 “팔, 다리 할 것 없지만 특히 머리도 심하다. 저녁에 머리를 감으면 시커먼 물이 나올 정도”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한번은 눈이 가려워 손으로 몇 번을 비볐는데 오히려 퉁퉁 부어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며 “공장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하루종일 ‘켁켁’ 거리며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 C씨(70‧여)는 “밤에는 공장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못이룰 정도다”며 “폐자재를 취급하는 공장은 밤늦게까지 쿵쾅거린다. 집 바로 옆에 그런 공장이 있으니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경로당 회장 D 씨(80)는 “아파도 마을 주변에 병원이나 보건소가 없어 택시를 타고 인천 검단까지 나가야 한다”며 “치료비는 1,500원인데 택시비는 왕복 12,000원이 넘는다.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하니 꾹꾹 참으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라며 “몸이 가렵고 각종 피부질환이 계속되어도 치료에 엄두를 못내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거나 의사 왕진과 같은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사월마을 주변에는 버스 정류장이 드물다. 주민들이 도보로 병원이 있는 시내까지 가기에 무리가 있는 까닭이다. 팜뉴스 취재진이 자동차로 사월마을에서 검단에 위치한 병원까지 이동한 결과 약 15분가량이 걸렸다.

잔인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인천시는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인천 서구청 관계자는 “사월마을은 자연녹지지역으로 분류된다”며 “현행법상 자연녹지지역엔 제2종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올 수 있다. 즉 제조업체가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 제조나 가공업체가 마을 근처에 위치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사월마을이 갈수록 ‘死’월 마을로 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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