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티딘 사태’가 발생한 이후 약 100일이 지났지만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라니티딘 의약품은 아직도 회수 절차가 전부 완료되지 않았고, 제약사들은 식약처가 후속 조치로 명령한 NDMA 검사를 실행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라니티딘 위‧수탁 업체가 도산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업계의 ‘새해맞이’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에 대해 판매중지 및 회수 조치를 내렸다. 회수 조치된 품목은 라니티딘 완제의약품 269품목으로, 2018년 발사르탄 사태와 마찬가지로 라니티딘 성분에서 1일 잠정 기준치인 96ng 이상의 NDMA(발암물질)가 검출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조치의 파장은 제약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회수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제약사들의 경우 한국의약품유통협회가 제시한 정산기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회수 절차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제약사들에게도 나름의 억울한 사정이 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유통협회에서 어떤 근거를 갖고 ‘보험가+회수 비용 3%’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며 “회수 비용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규정도 없다. 심지어 발사르탄 사태 때는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회수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통협회 측이 제시한 정산기준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인 것.

하지만 유통업계는 의약품 회수 비용에 대한 책임은 라니티딘 의약품의 제조사인 ‘제약사들의 몫’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 관계자는 “의약품 회수 비용은 제약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발사르탄 사태를 포함해 그동안 우리가 회수 비용을 감당했지만, 그것은 서비스 차원에서 해준 것”이라며 “더구나 약가 인하로 마진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이젠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중소제약사의 영업사원들은 라니티딘 회수과정에서 ‘굴욕’적인 상황까지 겪고 있다는 후문도 들리고 있다.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약사나 의사들에게 우리 공장으로, 라니티딘 제품을 반품하라고 하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며 “의약품 회수 절차에 의해 라니티딘을 공장으로 보내는 일에 대해 의‧약사들의 협조가 부족하다. 혹여나 보내달라고 하면 ‘너희들, 약이니까 너희가 보내’라는 식의 거센 비난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영업사원들이 병원 약국 등 거래처에 찾아가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읊조리고 설득하는 중이다. 라니티딘 의약품을 회수하기 위해서다”며 “제품을 박스에 담고 송장을 붙이고 있다. 95% 이상 회수가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의 내근직, 공장 인력, 영업관리, 배송 등 전부서에 걸쳐 업무 부담이 2~3배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업 인력이 이른바 ‘라니티딘 셔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물론 제약사 전체적으로 업무부담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

의·약사들이 라니티딘 회수 절차에 협조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상황이 이런데도 회수가 지연되면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게 돌린다”며 “하지만, 의사와 약사 역시 라니티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주체 아닌가.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자진회수에 대한 지침을 내려주면 회수 기간도 짧아지고 비용도 절감된다. 하지만 그런 조치가 없어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약사회 측은 반발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라니티딘 회수와 관련해 제약사들로부터 그동안 어떤 협조나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의약품 회수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제약사다. 협조요청이 있었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약사들의 신년 맞이를 더욱 고달프게 만들고 있는 또 다른 ‘골칫덩이’가 있다. 바로 NDMA 발생 가능성을 자체 조사한 뒤 평가결과를 올해 5월, 시험 결과는 2021년 5월까지 보고하라는 식약처의 지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라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 같은 중견 제약사들은 원료공급부터 제품 출하까지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NDMA 조사를 위한 TF는 물론 인력 구성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NDMA 발생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존 제품들을 전부 따져가며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별도의 TF를 구성하려면 현재 생산 중인 의약품을 모두 중단하거나 신약개발을 그만두어야 한다. 제약사가 이런 부분까지 모두 감수하면서 자체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라니티딘 사태’의 충격으로 도산한 CMO(의약품위탁생산) 업체가 나타났다는 것.

앞서의 관계자는 “라니티딘만 위‧수탁받아 생산하던 업체가 최근 부도가 났다. 그 업체에 딸린 식구만 몇 명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만약 해당 업체에서 도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보건 당국이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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